[정지아의 할매 열전]할매가 된 엄마

  • 📰 kyunghyang
  • ⏱ Reading Time:
  • 33 sec. here
  • 2 min. at publisher
  • 📊 Quality Score:
  • News: 17%
  • Publisher: 51%

정지아 뉴스

대한민국 최근 뉴스,대한민국 헤드 라인

내가 아는 최고령의 할매는 엄마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내 엄마도 할매라는 당연한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엄마는 할매가 아니고 그냥 엄마였으니까. 내 엄마는 1926년생,...

내 엄마는 1926년생, 올해 98세다. 구례 내려오기 전까지 나는 우리 엄마가 그 세대 중 고생으로는 상위 0.1%에 들 거라 확신했다. 1948년 겨울부터 1954년 봄까지 지리산에서, 체포된 이후 7년간 감옥에서 어떤 고초를 겪었을지 경험하지 않은 나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엄마는 마흔이 다 되어 세상으로 돌아왔다. 가난과 산에서 얻은 위장병이 천형처럼 찰싹 들러붙은 엄마의 삶은 내내 고달팠다. 노년에는 고된 노동으로 척추협착증까지 얻었다. 구례 내려와 알았다. 시골 할매치고 엄마보다 고달프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그 시대의 누구나 엄마만 한, 때로는 엄마보다 더한 삶의 무게를 견뎌냈다는 것을. 그 사실을 깨닫고 난 뒤 엄마가 아픈 추억을 들먹일 때마다 나는 야무지게 엄마 말을 뚝 잘랐다.

매몰찬 딸의 말에 엄마는 할 말을 잃었다. 속 깊고 다정한 성품의 엄마는 객관적이다 못해 냉정한 딸의 말이 늘 서글펐으리라. 그러나 한 번도 나를 나무란 적이 없다. 나무라기는커녕 노상 고맙단다. 사실 엄마를 모시면서 걱정이 많았다.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의 엄마가 늙어가면서 사람들을 괜히 의심하고 미워하지는 않을지 그게 제일 큰 걱정이었다. 그런 노인들을 많이 본 탓이다. 엄마 성격상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 같았다. 기우였다. 엄마는 언젠가부터 나쁜 말을 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말을 다 잊어버린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순간 나와 동생의 눈이 마주쳤고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동생이 착하긴 했지만 예쁘고 똑똑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수준이라는 걸 자기도 알았다. 듣기 좋으라고 그렇게 말한 것인지 기억의 왜곡이 일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늘 그런 식이다. 늙으면서 새롭게 변조된 엄마의 기억 속에서 나는 언제나 착했고, 엄마 속을 썩인 적이 없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엄마는 사춘기 시절의 내 꿈을 꾸고 놀라서 잠이 깼다. 어린 게 어쩌면 그렇게 독할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벌렁거린다고 토로한 적도 있다. 엄마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가장 먼저 잊었다. 산에서의 기억만 빼고.

 

귀하의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귀하의 의견은 검토 후 게시됩니다.
이 소식을 빠르게 읽을 수 있도록 요약했습니다. 뉴스에 관심이 있으시면 여기에서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 14. in KR

대한민국 최근 뉴스, 대한민국 헤드 라인

Similar News:다른 뉴스 소스에서 수집한 이와 유사한 뉴스 기사를 읽을 수도 있습니다.

[정지아의 할매 열전]운조루 종부 할매구례에는 영조 52년에 지어진 고택 운조루가 있다.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자가 새겨진 큰 뒤주로 유명한 집이다. 운조루의 주인 이씨 가문은 1년 소출의 20퍼센트인 쌀 서...
출처: kyunghyang - 🏆 14. / 51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아들이 먼저라는 엄마, 소녀는 방이 갖고 싶었다[2023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15] 큐레이션 06 엄마와 엄마의 엄마,
출처: OhmyNews_Korea - 🏆 16. / 51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서로를 '극혐'하던 모녀, 차마 하지 못한 말[2023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16] 큐레이션 06 엄마와 엄마의 엄마,
출처: OhmyNews_Korea - 🏆 16. / 51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앞은 못 보지만 연극도 보고 곰배령도 오릅니다[시력 잃고 알게 된 세상] 비교는 금물이라지만 이건 다르네
출처: OhmyNews_Korea - 🏆 16. / 51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학교 심리안정실이라는데.... 울부짖고 오줌 싸는 아이들[류승연의 특수교육 A to Z] 분리와 배제의 공간이 된 심리안정실
출처: OhmyNews_Korea - 🏆 16. / 51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자주 듣던 두음법칙, 뜻 풀어보면 '머리 소리' 얘기입니다알아 두면 쓸모 있는 우리말 맞춤법, 한자로 된 단어에만 적용하는 두음
출처: OhmyNews_Korea - 🏆 16. / 51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