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 적출 후 병신됐다 생각”5·18 당시 계엄군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신고한 많은 피해자들은 2018년 서지현 검사의 ‘미투’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첫 번째로 용기를 낸 이는 김선옥씨였다. 그해 김씨는 1980년 5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대에 붙잡혀 고문을 받았고 석방 전 수사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공개 증언했다. 서 검사의 ‘미투’에 이어, 김씨의 증언, 그리고 용기는 이어졌다. 정부 조사단과 ‘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피해 신고를 하고 조사에 응한 이들은 어느새 19명으로 늘었다.
“내가 밥을 잘 안 먹어요. 3일에 한 번 먹을까? 배가 안 고파. 그 대신 담배를 달고 살아요. 그리고 커피를 맨날 수십 잔 마셔요. 이걸 마셔야 안 불안하거든. 병원에 가면 동생이 의사 선생님한테 내가 커피랑 담배만 먹는다고 이르더라고.” “병원에서 계속 하혈을 했고, 닦을 것 좀 달라고 하니 그런 건 없대요. 옆에 쓰레기통을 보니까 다른 환자들이 감고 버린 붕대가 쌓여 있길래 그걸 아래에 대서 쓰고 버리고 했어요. 그때 어떤 군의관이 ‘대검으로 찍었구먼’ 하더라고요. 그제야 내가 뭐에 찔린 건 줄 알게 됐죠.” 결국 자궁 적출 수술까지 하게 됐고 ‘여자로서 끝났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나중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산부인과에 다시 가봤어요. 내가 누굴 만나 결혼하거나 애를 낳을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요. 그랬더니 병원에서 안 된대요. 이미 석회화돼서 들어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구나, 하고 돌아왔죠. 그리고 상대방한테 말했어요. ‘너랑 사귀는 건 안 될 것 같아. 친구나 하자’고요.”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내밀한 피해 경험에 관해 얘기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이씨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잘 몰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엄마 아빠는 내가 참 미웠나 봅니다. 여동생이 ‘처녀 농군’이었어요. 전두환이가 농촌지도자상을 주러 오는데, 군청에선 내가 언니인지 몰랐던 거예요. 비상이 걸렸죠. 동네 이장이 나한테 고향에 오지 말라더라고요.”이후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지 못했고, 사람들 눈을 피해 기도원 등을 돌아다니다가 쫓겨나듯 미국으로 갔다. 그는 기존 혈연, 지연 등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의 단절을 경험하는 2차 피해를 입게 됐다. 그는 “아버지가 나를 집에다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큰 돈이었던 700만원을 마련한 아버지는 브로커에게 돈을 보냈고 이씨는 비자를 받아 뉴욕으로 갔다. 그는 그곳 식품점에서 일하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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