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경쟁, 아픈 교실] 소나기(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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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10명 작가-한겨레 공동기획미니픽션 10부작 ⑨ 서윤빈

대한민국 교육이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수학능력시험 ‘킬러문항 배제’ 논쟁은 현행 입시제도를 둘러싼 각종 문제점이 다시 한번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을 통해 공교육의 한 단면이 드러나면서, 교육주체들의 여러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들의 바탕에는 승자독식 사회의 그림자를 그대로 담고 있는 대한민국 교육 현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부실해져 가는 공교육의 이면에는 갈수록 고도화, 효율화돼 번성하는 사교육이 존재합니다.한겨레는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작가 10명과 손잡고 한국 교육의 현실을 소재로 한 미니픽션 10회 연재 ‘슬픈 경쟁, 아픈 교실’을 시작합니다. 격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갈 이번 기획에는 장강명 정진영 주원규 한은형 최영 정아은 지영 염기원 서윤빈 서유미 작가가 함께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내가 사는 마을은 언덕을 경계로 읍내와 변두리가 갈렸다. 읍내에는 피시방과 오락실, 편의점, 노래방 따위의 여느 읍내에나 있을 만한 것들이 있었다. 굳이 차이를 꼽자면 우리가 그런 유흥거리들을 통칭해 인생이라고 불렀다는 것과 모든 가게의 간판이 당장 지워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낡았다는 것 정도. 어리둥절한 표정의 부엉이가 그려진 독서실 하나만이 한때는 번성할 뻔했다던 읍의 과거를 증언할 뿐이었다. 그래도 그곳이 그 시절 우리의 절반이었다. 시골이라고 자연을 뛰노는 순수한 소년·소녀는 없다. 우리에게 자연이란 몰래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울 대피처에 불과했다.

윤이는 특별히 활달한 애가 아니었는데도 학기 초부터 기이한 존재감을 발했다. 예쁘장한 외모 덕분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이상할 정도로 선배들의 방문이 잦았던 탓이다. 인생에서 보이지 않으면서도 선배들과 알고 지낼 확률은 잘은 몰라도 3%보다는 낮을 것이다. 우리 97%는 늘 그 기이한 현상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궁금해했다. 그러나 윤이는 언제나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문제집을 풀었다. 그 태도에서 나오는 서늘한 기운 탓에 우리는 아무것도 물어볼 엄두를 못 냈다. 몇몇은 선배들과 담배를 피우며 살짝 운을 띄워보기도 했지만, 선배들 역시 어물쩍 대답을 피할 뿐이었다. 마치 윤이의 이름이 어떤 금기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애들의 관심이 사라지고도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윤이와 대화를 텄다. 학교에서 읍내에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야 했는데, 여기 마을버스는 비가 오면 제멋대로 운행을 포기해버렸다. 그래서 비가 오면 우리는 알음알음 오토바이를 빌려 타거나 버려진 비닐하우스를 아지트 삼아 놀았다. 4월1일,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고 나는 상담이 잡히는 바람에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었다. 웅얼웅얼 불평을 씹으며 돌아온 교실에 윤이가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홀로 앉아 있었다. 윤이는 마치 흠뻑 젖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떨고 있었다. 이어폰도 거짓말처럼 책상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윤이가 책상이나 칠판이 아니라 허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문득 말을 걸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 보는 윤이의 화창한 표정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대답만큼은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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