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놈들은 착검하고 있으니까5·18 망언 항의 집회 등 선봉에싸웠다는 걸 국민이 알아줬으면…” 이행기 5·18구속부상자회 민주기사위원회 위원장이 1980년 5·18 항쟁의 기폭제가 된 택시 시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7013 포니’. 이행기 5·18구속부상자회 민주기사위원회 위원장은 40년 전 자신이 몰던 택시 차량 번호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1980년 당시 광주에서 영업하던 택시는 모두 700여대였다. 법인택시가 500대, 개인택시가 100대, 한시택시가 100대였다. 이 중 이씨는 한시택시를 몰았다. 80년식 새 차였다. 차는 비록 다른 사람의 소유였지만 이씨는 가정을 건사하게 해준 택시운전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때 브리사·포니는 신형, 코로나·코티나·쉐보레는 구형 택시였제. 나는 포니 한시택시를 몰았어요.
차량 행렬 뒤쪽에 있던 차들은 방향을 돌려 피했지만 앞쪽에 있던 차들은 그러지 못했다. 대다수 택시기사는 차를 버리고 달아났으나 차마 생계수단을 포기하지 못했던 일부 기사들은 차 안에서 몸을 웅크린 채 가만히 있다 몽둥이세례를 받았다. 이씨는 차에서 나와 제일은행 쪽 골목으로 도망치며 봉변을 피할 수 있었다. 1980년 5월19일 광주시민들이 불을 붙인 차량을 계엄군 쪽으로 보내기 위해 밀고 있다. 5·18기념재단 제공 이때부터 항쟁은 격화됐고 택시기사들은 본격적으로 시위대에 가담했다. 이씨는 시위대와 도청을 탈환하려 함께 행동했다. 이씨는 밤 9시께 충장로1가 입구 쪽에서 젊은 시위대 2명과 브리사 택시에 횃대를 매단 뒤 가속페달에 돌을 얹어 도청 쪽으로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차는 똑바로 가지 않고 길가 나무를 박았다. 이씨는 차로 가 운전대를 바로 하고 문을 닫으려는 찰나 머리 뒤쪽에 심한 고통과 함께 쓰러졌다. 멀리서 예의주시하던 계엄군이 뒤에서 급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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