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성’이 곧 신앙인 사회…“차별받고 밀려난 몸 품어요”

90년생 읽고 쓰는 무당 홍칼리 인터뷰“‘남성·이성애·비장애인’ 규범 넘어쌀 한 톨에도 권위 주는 게 샤머니즘”

2021-09-18 오후 5:00:00

오방보자기와 나비방울, 칼융의 레드북과 십자가가 작은 제단 위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뒤편 붉은 탁자 위에는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과 서리태, 마야 달력 등이 놓였다. 경기 고양시에 있는 무당 홍칼리의 신당은 여느 점집과 다르다.

90년생 읽고 쓰는 무당 홍칼리 인터뷰“‘남성·이성애·비장애인’ 규범 넘어쌀 한 톨에도 권위 주는 게 샤머니즘”

“‘남성·이성애·비장애인’ 규범 넘어쌀 한 톨에도 권위 주는 게 샤머니즘” 페미니스트 무당 홍칼리가 쓴 의 표지 일러스트. 위즈덤하우스 제공 오방 보자기와 나비 방울, 칼융의 과 십자가가 작은 제단 위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뒤편 붉은 탁자 위에는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과 서리태, 마야 달력 등이 놓였다. 경기 고양시에 있는 무당 홍칼리의 신당은 여느 점집과 다르다. 토속 신앙과 기독교가, 정신분석학과 운명학이 고요하게 교차한다. 다른 것은 신당 풍경만이 아니다. ‘무릎이 닿기도 전에’ 턱턱 답을 내놓는 여느 용한 무당과 달리, 홍칼리는 조심스럽게 성적 정체성과 성적 지향부터 묻는다. 상담을 마무리할 땐 값비싼 부적 대신 글쓰기를 권한다. 제사상엔 ‘슬픈 눈’의 돼지머리 대신 나물 반찬을 올리고, ‘작두 타다 다치면 산재처리라도 해주는’ 노동조합을 꿈꾼다. 지난 15일 ‘칼리 신당’에서 90년생 무당 홍칼리를 만났다. 그는 지난달 에세이 (위즈덤하우스)를 펴냈다. 무당으로 사는 삶과 자신의 고유한 직업 철학을 중점적으로 담았다. 책에서 그는 ‘해석자’인 무당을 이야기한다. 미래를 꿰뚫어보고 답을 내주는 사람이 아니라, 찾아오는 이들이 자신의 인생, 특히 고통과 시련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 참고할만한 ‘언어를 선사하는’ 사람을 무당이라고 정의한다. “사람들이 점을 보는 이유는 다른 관점의 해석을 듣고 싶어서가 아닐까요? 그런데 무당마저 편견이나 기존 언어에 갇혀 있으면 다른 해석을 해주지 못할 것 같았어요.” ‘다른 해석’을 애타게 찾던 시간이 그에게도 있었다. 5년 전 그는 임신중지 수술을 했고, 애인은 연락을 끊었다. 찾아간 곳에서 그에게 건넨 해석은 얄팍했다. “세 번 이혼을 하겠다” “남편을 치겠어, 성질 좀 죽여라” “여자는 두부랑 달걀 같은 거다. 연약해서 남자가 잘해주게 만들어야 한다” 등등. 이런 풀이를 두고 그는 “한 사람의 운명을 좁은 식견에 가두고 자기 인식의 한계를 타인의 삶의 한계라고 착각하는 것”이라고 썼다. 결국 홍칼리는 ‘편견’으로 굴절되지 않은 해석을 스스로 해보기로 결심한다. 제3자를 거치지 않고 ‘신령님’과 ‘다이렉트’로 소통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때부터 사주, 타로, 주역, 점성학 등 동서양 운명학을 공부했다. 2019년 여름 계룡산에서 내림굿도 받았다. 무당은 강신무(내림굿을 받은 무당)와 학습무(공부를 한 무당)로 나뉘는데, 홍 칼리는 둘 다 해당한다. 그런 그를 신 선생님(내림굿을 해준 사람)은 “짬뽕”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지난 15일 경기 고양시 ‘칼리 신당’에서 만난 홍칼리 작가. 홍작가는 꾸준히 여성학, 장애학, 기후변화 등을 공부하며 글을 쓰고, 이를 바탕으로 타인의 인생을 해석한다. 홍칼리 제공 편견의 울타리를 부수고 너른 해석의 벌판으로 나아가는 데 페미니즘은 큰 도움이 됐다고 홍칼리는 말한다. “무당은 페미니스트일 수밖에 없어요. 억압된 자의 목소리가 무당에게 실리는 게 굿이고, 해방이 이뤄지는 곳이 굿판이니까요. 페미니즘을 공부하지 않으면 기존 사회의 언어를 답습할 수밖에 없어요. 공기처럼 둥둥 떠다니는 차별은 페미니즘이라는 안경을 써야만 보이거든요. 이 관점에서 보면 페미니즘과 운명학은 통합니다. 내가 왜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 다른 해석을 준다는 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존중한다는 점에서요.” 페미니즘의 눈을 ‘탑재’한 그는 운명을 전복적으로 해석한다. “사주에 상관(傷官)은 틀을 깨고 저항하는 기운으로 풀이해요. 이게 남성에게 있으면 사회운동가처럼 기존 세계를 개혁하는 성향의 사주로 해석하는데, 여성에게 있으면 기존 가부장 질서를 치는 기운으로 봐서 불길하다, 시집 못 간다고 해석을 하죠. 그러나 저는 여성에게도 같은 기운으로 작용한다고 느껴요.” 식신(食神)도 마찬가지다. 무언가 ‘표현하는 기운’으로 풀이되는 이 사주는 여성에게만 가면 ‘자식복’으로 찌그러진다. 홍칼리는 여성에게도 창의성, 표현력이라는 평등한 풀이를 건넨다. 그의 시선에서 때로 이혼은 ‘길괘’가 되고, 결혼이 ‘흉괘’가 되기도 한다. 데이트폭력이나 가정폭력을 당한 손님에게는 점사 대신 신고를 권할 때도 있다. ‘제가 남자 복이 없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요…’ 많은 여성이 친밀한 관계에서 답답함을 느끼며 점집을 찾는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무책임하고 쉬운 처방은 ‘여자의 사나운 팔자’로 진단하는 것이다. 완벽한 오진이다. (…) 폭력적인 남편, 폭력적인 남친의 사주는 정해져 있지 않다. 문제는 폭력적으로 변하기 쉬운 관계다. 일대일 이성애 독점 관계에서 폭력은 쉽게 일어난다. (…) 나는 손님들에게 말한다. 헤어질지 말지 점사를 봐야 하는 일이 아니고 당장 헤어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 중 성별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타인의 운명을 좁혀 풀이하는 일도 경계한다. 손님에게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가장 먼저 묻는 것도 이 때문이다. 책에는 손님에게 ‘남자친구 없지요?’라고 물었다가 “저는 사실 스스로를 남성이라고 생각하고 여자를 좋아해요”라는 답을 들었던 일화가 담겨있다. 홍칼리는 성별 이분법에 ‘갇힌 점사’를 봐주려 했던 자신을 반성하면서 이렇게 썼다. “다양한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을 가지고 있는 손님들은 자신이 이상한 게 아닌지 확인하러 나를 찾아온다. (…) 이런 손님들은 굳이 점집에 오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기 위해,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확인받기 위해 무당을 찾는다.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사회의 분위기에 지쳐서 점집을 찾는 것이다.” 신당 앞에 선 무당 홍칼리. 홍칼리 제공 ‘정상성’에 대한 믿음이 신앙만큼 강력한 사회. “차별받고 밀려난 몸”들이 칼리 신당의 문을 두드린다. 칼리 신당 손님 90%는 여성이고, 20∼70대까지 연령대는 다양하지만 가장 많은 비율은 30대라고 한다. 결혼·출산이라는 사회적 압력을 받는 30대 여성의 방문이 많은 게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홍칼리는 모든 손님의 고민은 개별적이지만, 어느 정도 경향성은 보인다고 했다. “남성 손님들은 ‘저 결혼 언제 하나요?’를 묻는 반면, 여성 손님들은 ‘저 결혼 안 해도 괜찮겠죠?’를 물어보는 경우가 많아요. 자신은 (결혼이) 필요 없다고 느끼는데, 문화적 공기는 그렇지 않으니 제게 확신을 받고 싶어 묻는 거예요.” 협소하고 완고한 정상성을 해체하는 길 중 하나가 샤머니즘에 있다고 그는 믿는다. 샤머니즘이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샤머니즘은 모든 존재에게 신성이 깃들어 있고, 만물에 정령이 있다는 것을 아는 상태의 세계관이자 인생관이자 사회철학이자 정치적 실천이라고 생각해요. 쉽게 말해 ‘남성·이성애·비장애인’이 만들어 온 규범이 아니라, 쌀알 한 톨에도 권위를 주는 게 샤머니즘이죠. 그러니 샤머니즘, 페미니즘, 비거니즘은 결국 하나로 통하는 게 아닐까요?” 최윤아 기자 ah@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진실을 후원해주세요 용기를 가지고 끈질기게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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