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 대학이 무슬림 학생을 졸업생 대표 연설자로 선정했다가 이스라엘 단체 등이 반발하자 연설을 취소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기점으로 극심해진 미국 내 반유대주의와 이슬람 혐오가 또 한 번 대학가를 덮치면서, 전쟁이 낳은 혐오가 학생들 간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7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는 올해 졸업식에서 대표로 선정된 학생의 연설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USC는 성명을 통해 “최근 졸업생 대표 선정을 두고 온라인상에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며 “안전상의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졸업식 연설자로 선정됐던 아스나 타바섬은 무슬림이자 1세대 이주민이다. 타바섬은 이 대학에서 의학생명공학을 전공했으며, 부전공으로 제노사이드 저항의 역사를 공부했다. 앞서 그는 학업 우수자 100명 중에서도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온 점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아 졸업생 대표로 뽑혔다. 그러나 대학 내 유대인 단체 ‘이스라엘을 위한 트로이목마’는 이 결정에 반발했다. 이들은 타바섬이 과거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팔레스타인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점을 문제 삼았다. 이 단체는 성명을 내고 “그는 반유대주의와 반시오니즘을 퍼뜨리고 있다”며 졸업생 대표를 다시 선정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 e메일과 전화를 동원한 항의가 계속되자 USC는 결국 이들의 요구를 수용해 연설을 취소했다.
미국 내 최대 무슬림 단체인 미국-이슬람관계협의회는 성명에서 “USC는 치안 문제를 운운하며 비겁한 결정을 했다”고 비판했다. 미국 대학들의 표현의 자유 실태를 조사하는 비영리단체 ‘개인 권리와 표현을 위한 재단’의 잭 그린버그 변호사도 “가자지구 내 전쟁과 관련해 개인이 밝힌 의견에 일부 학생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행사를 취소하는 것은 특정 학생을 검열하는 것”이라고 AP통신에 말했다.타바섬은 “학교는 두려움에 굴복하고 혐오에 동조한 것일 뿐”이라며 “정말로 안전을 위한 선택이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평등과 인간 존엄에 대한 목소리가 혐오의 표현으로 왜곡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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