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어머니가 있다. 올해로 구순이 됐다. 백발의 노모는 언제 이승을 떠날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5시면 교회로 향한다. 차가운 겨울눈을 맞으며, 빙판길을 조심조심 간절한 마음으로 걷는다. 적막이 흐르는 교회 의자에 홀로 앉아 생애 마지막 소망을 두 손 모아 간절하게 기도를 드린다.
김 전 지회장은 당시 '기한 내에 희망퇴직을 하지 않으면 위로금도 받을 수 없다'라는 말들이 순식간에 퍼지면서 3월 2일 수백 명의 조합원들이 희망퇴직 서류를 제출하기 위해 공장으로 찾아왔었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중간 폐쇄를 막지 못한 모든 책임은 아직도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제가 친한 분들에게 전화 오면 희망퇴직은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재홍이 네가 내 가족과 일자리를 꼭 지켜준다고 약속하라'고 언성을 높이며 불안해했습니다. 저는 장담할 수는 없지만 힘들어도 남아서 함께 싸우면 반드시 희망이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썰물처럼 나가는 분들을 끝내 잡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후회가 됩니다. 조합원들에게 미안합니다. 만약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후회 없이 투쟁할 건데…"김재홍 전 지회장과 남겨진 사람들의 투쟁은 계속됐다.
고통은 끝났고, 아픔은 치유되고,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아가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미래로 가는 길에 군산공장 조합원들과 그 가족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노력했던 김재홍 지회장은 함께 갈 수 없었다. 회사 측은 그에게 2018년 7월 5일 '기물 파손 및 사내 폭행으로 인한 규율 질서 문란'이라는 사유로 해고를 최종 통보했다. 3년의 시간이 흐른 뒤 지옥 같았던 무급휴직이 끝났다. 그들은 대부분 부평 2공장으로 배치됐다. 그것도 잠시 그들은 2022년 11월, 부평 2공장 폐쇄로 또다시 정비부품물류로, 창원공장으로 일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부평에서 창원으로 전환 배치된 이들은 23년 하반기부터 내년 11월까지 창원공장에 남거나 다시 부평 1공장으로 배치가 완료될 예정이다. 군산공장 폐쇄 이후 살아남은 이들은 자동차공장을 떠돌아다니며 유목민처럼 살았다. 그 시간 동안 심리적 불안과 적응장애로 인해 사람 관계는 무너졌고, 아버지로서의 역할은 제대로 할 수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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