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6·25전쟁이 69주년을 맞았다. 기억이 희미해지기에 충분할 정도로 긴 세월이 지났다. 하지만 용서할 게 있다면 용서하되, 결코 비극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이 역사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다.국가보훈처 기록에 따르면 당시 결코 잊을 수 없는 비극적인 사건이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서울대병원 에서 벌어졌던 부상 국군 장병 학살 사건이다. 현장을 찾아봤다. 창경궁과 길 하나 사이에 있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쪽 통로를 통해 병원 구내에 들어서니 야트막한 언덕에 하얀 비가 하나 서 있다. 왼쪽에 ‘현충탑’이라고 크게 쓰고 오른쪽에는 ‘이름 모를 자유전사의 비’라고 작은 글씨로 적혀 있다. 1950년 6월 28일 이곳에서 벌어진 비극을 추념하는 시설물이다.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63년 6월 6일 한 언론인의 주도로 ‘이름 모를 자유전사의 비’를 건립해 오늘에 이른다. 1980년대에 현충탑이라는 표식이 더해진 이 비는 국가보훈처에 의해 현충시설로 지정됐다. 포로 학살은 반인류적이고 반인도적인 전쟁 범죄에 속한다. 이를 규명하고 책임자를 색출하는 일은 말 그대로 인도주의적인 ‘정의실현’이다. 전시에 포로를 학살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선 인도주의에 대한 국제적인 원칙과 국제법에 어긋나는 반인륜적인 전쟁범죄로 본다. 1864~1949년 4개의 협약이 마련되고 국제적으로 조인돼 인도주의에 대한 국제법의 기초가 되는 제네바 협약은 제3조는 이를 분명히 금지하고 있다.
당시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수상은 서울을 점령한 공로를 인정해 7월 5일 105땅크여단에 ‘서울’ 칭호를 수여했다. 이어 7월 27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이 부대에 ‘근위대’ 칭호를 붙여주는 정령 제54호를 발령했다. 이 부대는 사단으로 승격까지 해 명칭이 ‘근위 서울 제105 땅크사단’이 됐다. 2001년 5월 23일에는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정일의 명령으로 서울 점령 당시 여단장이던 류경수의 공적을 기려 부대 이름에 그의 이름을 넣었다. 그래서 그 뒤로 이 부대는 ‘근위 서울 류경수 제105땅크사단’으로 불린다. 류경수는 김일성과 함께 하바롭스크 인근의 소련군 88극동여단에서 소련군 중위로 근무하다 함께 북한으로 귀국한 인연이 있다. 한때 동서였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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