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세가 요동치는 격변기에 치러진 2024년 유럽의회 선거는 평소보다 많은 관심을 불러왔다. 유럽연합 차원에서 동시에 치러지는 선거는 각국의 정치 상황을 반영하는 풍향계 역할을 한다. 선거 결과는 여론조사 예측과 크게 다르지 않게 중도 우파를 중심으로 한 중도계 정당들의 과반수 확보와 함께 우익 포퓰리즘 과 극우 진영의 약진으로 나타났다.
2022년 대통령에 재선한 뒤 프랑스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잃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조기 총선은 커다란 도박이다. 전체 577석 중 마크롱이 속한 집권당은 169석을 차지하고 있다. 다른 중도 정당 동맹의 81석을 더해도 과반수에 미치지 못한다. 과거 경험상 동거정부에 참여하는 반대진영의 성공률은 반반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던진 주사위 패다. 신의 한 수인지, 무리한 패착인지는 다음 달 말 파리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에 결정 난다. 개막식에 등장할 마크롱 대통령의 표정에서 결과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유럽에서 포퓰리즘이 득세하게 된 데에는 상호 관련된 요인들이 얽혀 있다. 임금 정체, 높은 실업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행한 긴축 정책들은 경제적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동시에 전통적인 정치와 제도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을 초래했다. 나눠 먹을 파이가 작아지면서 더 이상 유럽인들은 부유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거기에 이민자와 난민 유입이 증가하면서 문화적 통합과 국가 정체성에도 우려가 제기됐다.
소셜미디어의 부상은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이 전통 미디어를 우회하며 유권자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게 했고, 알고리즘은 기존의 견해를 강화하는 정보들만 노출하며 급진화의 여지를 제공했다.오랜 기간 중도우파와 중도좌파 간의 경쟁이 됐던 정치 지형은 중도와 극단 진영 간의 대결로 바뀌고 있다. 쉽고 직접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사이다의 정치’를 구현하는 포퓰리즘에 비해 중도 주류 정치는 설득과 양해를 위한 어려운 언어를 구사하며 국민에게 ‘미지근한 물’을 마실 것을 호소한다. 증오를 외치는 정치는 양해를 구하는 정치보다 언제나 유권자에 다가가기 쉽다. 반면 어려운 경쟁 지형에 놓인 중도 진영이 활용할 정책 수단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혁신과 건전재정을 강조하는 중도우파는 인기 없는 정책을 반복해야 하는 숙명을 갖는다. 복지국가가 이미 성숙한 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가 갖는 입지도 점점 약화하고 있다.
인기에 영합하는 사이다의 끝은 갈증과 당뇨다. 하지만 탄산과 당분을 섞지 않고도 지지를 유지하려면 그만큼 개방적이고, 유연하고, 안정적이고, 전문적이어야 한다. 미지근한 물 대신에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뜨겁게 바꾸어 가며 유권자들에게 다가가서,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의견을 들어야 한다.
포퓰리즘 승부수 프랑스 대통령 우익 포퓰리즘 유럽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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