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나를 잊지 말아요 - 오월이 오면'이라는 부제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조명했다.이에 길자 씨는 버선발로 아들을 데리러 갔고, 거리에서 길자 씨는 총을 든 군인들을 보고 크게 놀랐다. 살기가 느껴지는 군인들을 피해 아들과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직장 동료들과 식사를 하러 가는 길 다짜고짜 군인들에게 두드려 맞았던 경철 씨. 하지만 그는 청각 장애자로 그 어떤 항의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경철 씨 같은 일을 당한 사람들은 더 많았다.
시위대의 시위는 거세지만 언론까지 탄압해 광주는 더욱더 고립이 되어 갔다. 그러는 중에 계엄군과 시민들 사이에서는 엄청난 혈투가 벌어졌고, 5월 21일 계엄군들은 수백 발의 총알로 시민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계엄군들은 시위대뿐만 아니라 단순한 행인들에게까지 총을 발포했다. 이날 사망한 사망자만 최소 50명. 사라진 오빠를 찾기 위해 버스에 올랐던 금숙 씨는 계엄군의 공격을 받았다. 계엄군이 버스를 향해 무차별 난사를 했던 것이다. 당시 버스에 타고 있던 18명 중 금숙 씨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사망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남은 금숙 씨는 혼자 살아남은 것을 후회하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시민군 17명이 사망했고 100여 명이 체포됐다. 그리고 다음날 계엄군은 도청 진압을 자축했고 작전 수행 중 사망한 이는 한 명도 없다는 뻔한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계엄군 모두가 기뻐한 것은 아니었다. 신군부의 수뇌부만이 크게 기뻐했고 그 중심에는 전두환이 있었다.마침대 1980년 9월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리고 국민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국민들 대부분은 빨갱이들이 폭동을 일으켰다고 믿고 있었던 것. 언론에서 5.18은 금기어가 되어 버렸고, 언급 시에는 유언비어 유포죄로 검거됐다.하지만 아무리 감추려 해도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는 법. 1987년 여름 독일에서 외교 행낭이 하나 도착했다. 장용주 신부님은 자신이 보고 듣고 아는 진실을 기피해선 안 된다며 그것을 알리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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