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로 수백 명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재난 희생자 확인팀을 꾸려 신원 확인에 나섰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2014년 12월, 그 경험과 노하우를 담은 희생자 관리 매뉴얼을 만든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2014년 4월, 진도 팽목항 에 설치된 임시 안치소. 〈사진=연합뉴스〉눈길을 끄는 건 제목입니다. 매뉴얼 실물 책자의 표지엔 '기다림과 위로-더 아픈 이를 위해 기다립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정부 기관이 내부용으로 만든 매뉴얼 제목으로 보기 상당히 독특합니다.서문은 더 그렇습니다. '기다림'이라는 제목의 서문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거기 있었던 것을 압니다'. 이 서문은 참사 발생 3개월째 되는 달 진도에서 쓰였다고 합니다. 일부를 그대로 옮겨봅니다.
우리는 아직 당신이 거기에 있는 것을 압니다. 그러기에 마지막 한 사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당신을 애타게 그리는 소중한 가족 품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멀지만 가까운 곳에 있을 것을 압니다. 우리는 아직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014년 4월 진도 팽목항에서 가족들이 사망자 명단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침몰한 세월호에서 시신을 꺼내 수습하는 작업은 210일 동안 진행됐습니다. 이 기간 재난 희생자 확인팀에 모인 국과수 직원들과 대학 소속 법의학자들은 진도 팽목항 검안소에서 24시간 머물렀습니다. 시신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법치의학자로, 시신의 치아 특성을 분석해 신원을 확인하던 윤창륙 전 조선대 명예교수는 “40년 동안 각종 사건·사고 현장에서 7000구의 시신을 봐 왔지만 세월호 참사 때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참담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물에 오래 있어 훼손이 심한 시신이 많았습니다. 시료를 채취해 가까운 국과수 분원으로 보내 DNA를 분석했습니다. 지문ㆍ치아ㆍ유전자 중 하나만 일치하면 신원이 확인되는데, 미성년자인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은 지문 등록이 안 돼 있어 감식에 어려움이 컸다고 합니다.그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고 부패한 냄새가 진동하는데도 자식의 얼굴에 볼을 맞대고 비비며 절규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라고 했습니다. 당시 국과수 데이터베이스 실장이었던 임시근 성균관대 교수도 그랬습니다. 그는 참사 당시 시료 분석부터 세월호 선사 '청해진 해운'의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시신 최종 확인까지 도맡아 왔습니다. 임 교수는 “자녀의 시신을 찾았다고 좋아하는 부모들, 그 옆에 '우리 아이는 언제 나오냐'며 하염없이 기다리는 부모들을 옆에서 보는 것 자체가 상상 못 할 스트레스였다”라고 했습니다.이들이 한목소리로 힘주어 말한 대목이 있습니다. "10년이 지났지만, 사건을 결코 잊을 수 없다"라며 "잊어서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임 교수는 "아직 5명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 언젠가 남쪽 바다, 예를 들어 일본 어디선가에서 뼈 한 조각이라도 나오면 반드시 확인해 돌려드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윤 교수은 10년째 카카오톡 프로필에 세월호 침몰 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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