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로 인해 '내가 먼저 살아야겠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 97년생 이서정
10년 전 동갑내기들이 탄 세월호를 목격해야 했던 97년생들은 이제 스물여덟, 사회초년생 나이가 됐다. 세월호 이후 이들은 주로"책임을 회피하는 어른들"의 모습에 실망해,"정부와 국가에 대한 불신"을 느꼈다고 답변했다. 이 공통의 경험은"내가 먼저 살아야 한다"로 흐르거나, 혹은 역설적으로"함께 겪은 무기력함을 뛰어넘을 수 있는 연대의 힘"을 갈구하는 쪽으로 귀결됐다.는 설문조사와 별도로 10명의 97년생을 추가로 직접 만났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 5명을 비롯해 경찰과 목사를 준비하고 있는 청년들, 직장인, 시민사회 활동가, 최근 이태원 참사로 동생을 잃은 97년생 등이다. 10년 전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그들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경찰 중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 줄 거예요. 남에게 미루지 않고 책임지는,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찰이요.
세월호 참사 생존자 이주호씨는"구조 후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아버지가 처음 했던 말을 지금까지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때 아버지는 그에게"너, 앞으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했다. 돌아오지 못한 대다수 친구들을 기리며 한 말이었다. 이씨는 지난해부터 물리치료사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환자마다 최선을 다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퇴근 후 오후 8시쯤에야 만날 수 있었던 그의 손에는 굳은살이 박여있었다. 김씨는"세월호를 부정하는 기성 목사들의 신앙은 잘못됐다"고 단호히 말했다. 김씨는 구별 없이 사랑을 전해야 할 종교의 영역마저 정치 진영으로 갈리고, 세월호 참사가 그 진영을 나누는 기준이 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김씨는"어떤 교회에서는 저의 활동 이력을 보더니 '국민의힘에 민주당이 들어온 거냐'고 하더라"라며"그들과 같은 목사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년 전부터 4.16 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97년생 강가라연씨는 시민사회운동도 새롭게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한 청소년이 피켓에 쓰인 '사참위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걸 보고 크게 깨달았다"면서"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인 만큼, 정보와 언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롭고 평등하게 주어질 수 있어야만 과거에 머물러 있는 운동이 아닌 미래지향적 운동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오씨는"스무살이 되기 전까지 대한민국의 학생으로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가만히 있어라', '애들은 조용히 해라'였다"라며"이젠 가만히 있지 않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도모하려는 태도를 가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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