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뒤 나온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이 없었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4·10 총선 결과를 모르고 있나라는 의구심이 들 뻔했다. 총선 엿새 뒤 발표된 윤 대통령의 12분짜리 공개 입장 표명은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상투적 표현을 빼면 이렇게 요약된다. ‘국정 방향은 옳았다. 최선도 다했다. 그러나 국민들이 변화를 느끼지 못한 건 내 책임이다.’ 여당이 총선에서 이겼더라면 겸손함을 보여줬을, 괜찮은 메시지일 수 있다. 하지만 여당은 처참하게 졌다. 역대 대통령처럼, 자포자기 심정으로 “역사는 나를 평가해줄 것”이라는 임기 말 ‘역사와의 대화’ 증상이 시작됐다고 보일 순 있겠다.
윤 대통령은 지난 2년간 여러 번 ‘국민 뜻을 받들겠다’고 했다. 대선 승리 후 첫 일성이 “오직 국민 뜻에 따르며 국민만 보고 가겠다”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선 “민심을 겸허히 받들겠다”고 했다. 지난해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다시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했다. 고집불통 국정으로 지지율이 뚝 떨어지고, 선거에서 지면 몸을 낮췄다가 상황이 나아진다 싶으면 고개를 들었다. 비극의 전조는 반복됐다. 윤 대통령은 총선 결과가 국정의 분수령이 될 것임을 알고, 이기려고 애를 썼다. ‘디올백’ 김건희 여사 얼굴을 숨기고,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장관을 호주로 빼돌리고, ‘관권선거 시비’ 민생토론회를 24번 열었다. 하지만 ‘대파’당할지 몰랐던 걸까. 부글부글 끓는 민심을 알아채지 못했다면 문제다.
윤 대통령은 정치 데뷔 8개월 만에, 역대 최소 표차로 신승했다. 리더십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시민들도 많은 걸 기대하진 않았을 게다. 그저 대선 슬로건처럼 ‘공정과 상식’의 국정운영을 바랐지만, ‘불공정과 몰상식’으로 일관했다. 변하지 않는 대통령이 ‘국민을 위한다’고 하면 곧이곧대로 믿고, 박수쳐줄 국민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이제는 야당의 협조 없이는 법안 하나 제 뜻대로 할 수도, 벌여놓은 일을 마무리할 수도 없다. 고작 시행령 고치는 수준으로 뭘 얼마나 바꿀 수 있겠나. 그런데 윤 대통령은 ‘협치’란 말조차 하지 않는다. 제1 야당 대표와의 만남은 지금도 ‘검토 중’이다. 이런 식이면, 윤 대통령이 향후 3년도 이전과 달라질 게 없을 것이란 회의감이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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