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에게 인권은 시집살이예요” [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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휭휭 칼바람 소리가 교실 내 유리창까지 매섭게 들리는 겨울날. 나는 어느 교실에서 지친 몸을 책상에 겨우 기대어 학업의 열의를 붙들고 있는 중장년의 학생들과 인권을 공부하고 ...

휭휭 칼바람 소리가 교실 내 유리창까지 매섭게 들리는 겨울날. 나는 어느 교실에서 지친 몸을 책상에 겨우 기대어 학업의 열의를 붙들고 있는 중장년의 학생들과 인권을 공부하고 있다. 선생으로서 나는 인권이란 무엇인가를 물어야만 했다. 추상적 질문 앞에 돌아온 것은 두 눈 끔벅이는 무언의 당혹감뿐이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교수자로서 나는 누군가 대답할 때까지 한동안 침묵의 무게를 견뎌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결국 책 몇 페이지를 펼치시라 하고는 한 시간 가까이 자연법과 실정법이 어쩌고저쩌고하고 말았다. ‘교수’다운 침묵 해결 방식 앞에서 학생들은 더더욱 입을 꾹 다물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뭐라 뭐라. 가수 나훈아가 무대 위에서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따 ‘아! 테스형!’하고 깊이 탄식할 때는 공감과 박수가 돌아왔지만, 내가 강당 위에서 비슷한 시대의 지식인을 똑같이 불렀을 때 돌아온 건 오직 절망뿐이었다. 학생들에게 대체 인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인간의, 인간적인, 인간이기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권리의 힘을 알리는 것은 생각처럼 간단치 않았다. 현실에서 인권이란 마치 공기와도 같아서 결핍되지 않은 우리들은 좀처럼 그 중요성을 느낄 수 없었다.

한 교시를 마치며 오리무중 속 인권에 관한 철학 강의를 멈추기로 마음먹고, 학생들과 나는 몽고메리에서 촉발한 버스 타기 거부 운동을 다룬 비디오를 보았다. 백인에게 좌석을 양보하지 않은 죄로 체포당한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와 연대하는 흑인 사회가 버스를 타지 말자고 외치며 381일간 4만여명이 버스를 타지 않은 끝에 버스 내 인종차별철폐를 이뤄낸 인권사의 흔적을 마주하는 가운데 학생들은 금세 몰입했다.영상을 다 보고 또다시 물었다. 인종차별에 반대한 시민들이 요구했던 버스를 함께 탈 권리도 인권인데, 지금의 당신에게 인권이란 무엇인지. 침묵을 깬 한 중년 여학생이 말했다. “선생님, 저에게 인권은 시집살이예요.” 예상치 못한 정의 앞에서 나는 그에게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을지 묻고 그의 입을 한참 쳐다보았다. 그는 자신이 겪어온 오랜 시집살이의 역사를 조용히 이어갔다.

“저에게 인권이란 시집살이예요.” 어쩐지 불분명하고 어색한 그 정의는 곱씹을수록 그 어떤 말보다 뚜렷했다. 삶의 역사로부터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타인의 표현에 기대지 않은 채로 스스로 정의한 인권. 한평생 어느 집에선가 문제로 정의되었던 자가 교실에서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는 모습을 새로이 마주한 나는 선생으로서 왠지 부끄럽고 동료로서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인권이 밥 먹여주냐는 세상의 빈정거림을 뒤로한 채, 그는 한평생 삶의 권리를 존중받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밥을 차리기만 해야 했던 사실을 말했다. 교실에 앉아 있는 중년의 학생들은 붉어진 눈시울로 그의 인권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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