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피해자들의 변호사 “법에서 하지 말란 것 빼고 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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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하고 싶어요, 남편과.” 개업 변호사 1년 차 때였다. 청각장애인 여성이 그가 무료로 상담하던 가정법률상담소를 찾았다. 처음엔 흔하디흔한 이혼상담일 줄 알았다. 듣다 보니, 그렇지 않았다. 여성은 성폭력 피해 여성이었다. 가해자는 다름 아닌 현재 남편. 그러니까 그 여성은 자신을 성폭행했던 남자와 결혼한 거였다.

개업 변호사 1년 차 때였다. 청각장애인 여성이 그가 무료로 상담하던 가정법률상담소를 찾았다. 처음엔 흔하디흔한 이혼 상담일 줄 알았다. 듣다 보니, 그렇지 않았다. 여성은 성폭력 피해 여성이었다. 가해자는 다름 아닌 현재 남편.“변호사를 하면서 처음이었어요, 피해자를 실제로 마주한 건. 국선 일을 받아서 할 때도, 제가 대리하는 쪽은 늘 피고인이었거든요. 그런데 가정법률상담소에서 무료 상담 봉사를 하면서 내가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됐죠. 이혼하고 싶다고 찾아온 여성들 대부분이 남편에게 매 맞는 아내였어요. 자녀들 역시 가정폭력의 피해자였고요. 큰 충격을 받았죠.”가정폭력 관련법을 닥치는 대로 파헤쳤다. 그러던 중 누군가 그 앞에 운명의 융단을 깔아주듯, 기회가 왔다. 2013년, 법무부가 최초로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낸 것이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사실 이름 석 자보다 담당했던 사건으로 더 유명하다.

어떤 일을 오래 한다고 해서 모두가 ‘베테랑’이 되는 것은 아니다. 베테랑을 만드는 한 끗의 차이는 작은 곳에 있다. 매일 쓰는 도구, 매일 보내온 시간, 오래 지속해온 루틴… 그 반복에 한 끗의 비밀이 있을 테다.오후 1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그는 서초경찰서 방향에서 성큼성큼 걸어왔다. 잰걸음으로 법원에 들어선 그는, 어깨에 낡은 쇼퍼백을 메고 있었다. 딱 봐도 손때 묻은 가방. 그런데 가방끈만 새것이다.그 속에 든 물건도 가방 못지않게 나이가 지긋하다. 인감도장이 든 작은 가죽 주머니, 그가 소속된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받은 USB, 뒷면에 흘겨 쓴 글씨들이 어지럽게 적힌 이면지 뭉치, 행사 때마다 사은품으로 나눠주는 볼펜 몇 자루… 소지품을 꺼내 보이는 그가 민망함에 혼잣말을 한다.신진희 변호사가 사무실 책상 위에 가방 속 소지품들을 꺼내놨다. 모두 그와 오랜 세월 함께해 손때가 묻은 것들이다. 그중 새것이라곤 휴대폰 정도다. 이한호 기자과 결혼으로 시작됐어요.

그도 그럴 게 7.3인치짜리 이 작은 기계는 그에게 업의 역사이자 현장이다.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로 살아온 11년이 이 안에 있기 때문이다. 저장된 번호는 5,000개가 넘는다. 10년 변론한 피해자의 수만 해도 3,690여 명이니."피해자가 어떤 마음으로 이 전화를 걸었는지 알 수 없잖아요. 알고 보니 극도로 불안한 와중에 겨우 힘을 내서 저한테 전화를 건 걸 수도 있죠. 근데 제가 그걸 못 받았다면 어떻겠어요. 힘겹게 쌓아보려 했던 믿음이 무너지겠죠."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하루 평균 30명가량의 피해자와 수시로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다. 통화 상담은 기본이 5건 이상, 한번 시작된 전화는 2시간을 넘기는 게 다반사다. 오전 7시부터 자정 무렵까지 17시간, 깨어있는 내내 이 도구와 한 몸이다.11년 전 이 일을 시작한 이래 벌써 여섯 번째 기계다. 1년이면 화면의 픽셀이 깨지기 시작한다. ‘제발 은퇴시켜 달라’고 아우성을 지르는 수준이랄까.

“2013년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로 선발된 1기 변호사가 총 11명인데, 지금은 저를 포함해 2명만 남았어요. 스트레스로 귀가 안 들려서 일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분도 있었고요.”“처음엔 같은 일을 하는 변호사들을 만나 넋두리를 했죠. 나중엔 그런 만남 자체가 힘들더라고요. 각자 자기 몫의 고통이 크니까, 남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아요.”“그래서 나중엔 입을 다물게 되더라고요. 누군가 찾아오면 그저 듣기만 했어요. 그런 만남을 조금씩 줄여나갔죠. 내가 고여 있는 물이 돼서 그런 걸까요. 더 이상 그런 대화에서 위안을 얻을 수가 없었거든요.”“절 구해준 건 강의였어요. 1기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다 보니까 ‘그 경험을 나눠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았거든요. 처음엔 별생각 없이 응했죠. 근데 어느 순간, 내가 그 일을 좋아하고 있더라고요. 강의안을 준비하는 과정부터가 발산이었어요.”벽을 만나 꺾일 때마다 자조적인 푸념을 삼키는 대신 ‘바꿔 달라’는 목소리를 뱉는 쪽을 택한 거다.

“맞아요. 어떤 사건을 보면 ‘과연 재판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재판으로 넘어가도 ‘과연 유죄 판결이 나올까?’ 싶고요. 결과는 뻔하다, 예상을 빗나가지 않을 거다, 이런 생각이 들면 착각이에요. 그런 예상은 쉽게 깨져요. 그럴 때마다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느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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