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아녀. 전쟁판이 이렇게 돌아가면 빨갱이들이 우리를 가만 두겄냐?"그런데 이판성의 형 이판일은"전도사님을 얼른 피신시켜야 한다. 네가 안전하게 피신시켜 드려라"라고 엉뚱한 주문을 했다. 이판성은 형님한테 순종하는 자세로 두말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안위보다 주님의 종인 이봉성 전도사를 안전하게 피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임자교회 치리목사였던 이성봉 목사에게 문안 인사를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목포교회에 시무하던 이성봉 목사는 무안군 임자, 증도, 암태 등 교회가 세워진 섬마을을 순회하며 신자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등 담임목사가 없는 무안군 전체 지역을 관장하던 목사였다. 이판일, 이판성 형제와 그들의 어머니 남구산이 1934년 임자교회에서 세례를 받을 때 세례식을 거행한 이도 이성봉이었다. "전부 연행해"라는 인솔자의 지시에 따라 동행한 완장 찬 청년들의 동작이 부지런했다. 중간에 있을 수 있는 도망을 방지하기 위해 뒷결박을 지었다. 10세 전후의 아이들이 입을 삐죽이다 끝내 울음을 터뜨렸으나, 20세 이상의 성인들은 한결같이 의연했다.1950년 10월 4일 밤 11시가 넘어서 죽음의 행진 대열은 임자교회에서 무안군 임자면 대기리 모래산으로 향했다. 3km가 넘는 밤길은 젊은 사람에게도 힘겨운 것인데, 78세의 남구산에게는 더욱 그랬다. 돌부리를 걷어차고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자 완장 찬 이들은 남구산을 시범 케이스로 죽창으로 찌르고 쇠몽둥이로 내리쳤다. 하지만 남구산은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옆에서 피눈물을 흘리던 이판일·이판성 형제는"어머니만은 무자비하게 죽이지 말아달라"고 간청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구산이"얘들아, 비겁하게 죽으면 못써"라며 엄히 꾸짖었다. 사방에서"아멘" 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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