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나눔 봉사라고 했다. 배달 온 짜장면을 나르나? 예상이 빗나갔다. 짜장면을 만들었다. 그것도 길거리에서. 봉사자들이 커다란 망에서 양파들을 꺼내 껍질을 벗기고 깍두기 모양으로 썰었다. 감자와 호박도 똑같이 깍두기 모양으로 썰고, 오이는 채를 쳤다. 300인분을 준비한다더니 야채들 양이 어마어마하다. 도마만 10개가 넘는다.
"그때 우리 곁에서 물도 챙겨주고, 밥도 챙겨주고, 주변 청소도 해주는 분들이 계셨어요. 안산 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에 왔을 때도 상주해서 봉사하는 분들이 있었고요.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그냥 하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분들이 너무 고마운 거예요. 일일이 찾아가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은 이 마음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어요."받은 위로를 또 다른 사랑으로 돌려주기로 했다. 참사가 난 바로 다음 해인 지난 2015년부터 연탄 나눔 봉사를 했다. 2018년에는 아예 4.16봉사단을 꾸렸다. 겨울이면 연탄뿐 아니라 직접 몇백 포기씩 김장해서 방한용품과 함께 이웃에 나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은 2022년 3월 경북 울진 산불 현장에 찾아갔던 일이다. 철도직원 숙소를 임시 거처로 삼고 있는 이재민들에게 세월호 유가족임을 알리고선 밥도 하고 말벗도 해드리면서 아픔을 나눴다. "꽃을 잘 피워내기 위해서는 적당한 일조량과 거름, 그리고 물이 필요해요.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피기 위해서도 그런 것들이 필요했단 말이죠. 그런데 우리 아이들을 대하는 사회는 어땠나요? 방관하고 방조했어요. 저도 이 사회의 어른이죠. 그의 딸 은정이는 별명이 '성격 미인'일 정도로 친구들과 두루 잘 지냈다. 집에서도 효녀였다. 일하는 엄마가 힘들까 봐 어깨도 주물러주고 부엌에서 음식하고 있으면 뒤에 와서"사랑해" 하며 안아주는 딸이었다.사랑이 많은 아이는 엄마 일도 열심히 도왔다. 미용실을 할 때는 한 살 위인 오빠와 함께 학교 끝나고 와서 파마를 말 때 쓰는 종이들을 펴는 일을 도맡았다. 은정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식당을 시작하자 두 아이는 주말에 홀 서빙 알바를 했다. 점심 한 끼만 하면 1만 원, 저녁까지 하면 2만 원씩 줬는데 점심만 하고 사라지던 첫째와 달리 은정이는 저녁까지 식당에서 일을 했다. 그 돈을 모아서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이 되면 필요한 걸 사라고 봉투를 건네곤 했다.
"딸 보내놓고 지금까지 우리 아들하고 명절을 같이 보낸 적이 없더라고요. 이번 추석 때에야 그 생각이 든 거예요. 추석날 팽목에서 음식을 하다가 아들한테 전화했어요. 지금 뭐 하고 있느냐고 물으니 그냥 원룸 방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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