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공화국, 가족이 위태롭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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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공화국, 가족이 위태롭다

산업도시들 재생산 위기로 일자리 찾으러 서울로 몰려 1인 가구 급증 대구에서 서울로, 다시 경남 거제에 터...

26.1.2020

문제는 일을 하러, 짝을 만나러 청년들이 서울로 몰려들며 서울과 수도권이 비대해지고 있어도 이곳 역시 다음 세대를 낳을 여건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산업도시들 재생산 위기로 일자리 찾으러 서울로 몰려 1인 가구 급증 대구에서 서울로, 다시 경남 거제에 터...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으로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산업도시들 재생산 위기로 일자리 찾으러 서울로 몰려 1인 가구 급증 대구에서 서울로, 다시 경남 거제에 터를 잡았다가 다시 서울로. 해양플랜트 엔지니어 출신인 최성민씨(41·가명)의 주소는 주기적으로 바뀌었다. 대구의 한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뒤 서울에 본사를 둔 대기업에 입사할 때까지만 해도 서울과 지방을 전전하는 삶이 계속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활황을 이어가던 조선업계가 해양플랜트 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 무렵에는 그 역시 미국과 말레이시아 등 해외에서 오랜 파견 생활까지 감내하며 몸담은 회사를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해양플랜트 산업의 위기를 시작으로 다니던 회사가 흔들리자 그 역시 희망퇴직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거제로 갔을 때도, 서울로 왔을 때도 어떻게든 결혼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번듯한 직장이 있을 때도 힘들었던 결혼이 퇴사하고 나이를 더 먹은 지금에 와서 쉬울 리가 있겠나.” 최씨는 첫 직장에서 희망퇴직한 뒤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서울에서 새로운 직장을 찾았지만 여전히 결혼은 어렵다고 말했다. 거제는 남성 노동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지역 연고가 없는 타지 출신 노동자가, 그것도 직장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짝을 찾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최씨의 예상과는 달리 서울 역시 미혼·비혼 노동자에게는 살기가 녹록지 않다는 점은 비슷했다. 지역 무너뜨리는 ‘중공업 가족’의 해체 수도권 인구가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50%를 넘으며 ‘서울 공화국’의 영토는 수도권으로 넓혀지고 있다. 인구는 지역의 경제력을 반영하는 요소 중 하나다. 미국의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가 경제 규모에 따라 세계 광역경제권의 순위를 매긴 2014년 자료를 보면 한국의 수도권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규모가 큰 경제권이다. 그해 한국 국내총생산(GDP) 순위가 세계에서 13위였다는 점과 비교하면 수도권에 쏠린 경제력의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수도권 바깥 지역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단지 경제력뿐만이 아니다. 인구를 재생산하는 기초 단위인 가족 역시 빠르게 위기에 몰리고 있다. “경남 거제는 물론 울산이나 경남 창원, 경북 포항 같은 이름난 산업도시에서 재생산의 위기가 오고 있는 모습은 비슷하게 발견된다. ‘중공업 가족’의 해체가 지역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사회학)는 경남 거제 조선소 현장에서 5년간 일하며 몸소 겪은 조선산업의 성쇠를<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라는 책을 통해 세밀하게 기록했다. 책으로 쓴 위기 상황은 지금도 유효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문제의식은 이후에도 크게 진전되지는 못했다. 그는 “물론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 위기를 타개하려는 노력이 산발적으로 이어지고는 있지만 총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대책을 세우기엔 아직 미흡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가 말하는 ‘중공업 가족’은 거제처럼 산업화 시기 지역경제는 물론 사회와 가족구조를 충실히 재생산해 나가는 데 일익을 담당했던 ‘가족’이 벼랑 앞에 서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 표현이다. 안정적인 수입이 있던 남성 중심의 현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결혼과 2세 출산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정상 가족’을 만들어가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자녀가 공부를 잘하면 서울로 갈 수 있게 지원하지만 지역 안에서도 충분히 질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 무리해가며 타지로 보낼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지역사회는 탄탄하게 굴러갔고, 자녀세대 역시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가족관계의 위기를 맞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 이 중공업 가족은 조선업 위기를 맞아 해체되기 시작했고, 산업도시의 일원이 되기 어려웠던 수도권 출신 젊은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지역을 벗어나는 움직임이 뒤따르면서 가족은 지역을 뒷받침하는 바탕이 될 수 없게 됐다. 최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거제에 있을 때는 ‘소개팅’을 한번 하려 해도 부산이나 대구까지 나가야 상대를 만날 수 있는 상황이니까, 선배들처럼 그곳에 정착해서 살 방도가 없었다.” 지역 기반산업의 위기가 가족의 해체를 불렀다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떠나고 싶던 타지 출신 노동자들이 미련없이 떠나게 할 이유는 됐다고 양 교수도 지적했다.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고 자리 잡기가 마땅찮은 도시에서 결혼을 하고 가족을 꾸리기 위해 여성에게 일방적인 부담을 줄 수도 없었다.” 문제는 일을 하러, 짝을 만나러 청년들이 서울로 몰려들며 서울과 수도권이 비대해지고 있어도 이곳 역시 다음 세대를 낳을 여건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여성 노동자 역시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르지만 가족을 만들기 힘들어지는 모습은 일견 비슷하다. 경북 구미의 전자산업 공장에서 일하다 다니던 회사가 위기를 맞으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서울에 온 임현지씨(31) 역시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남동생은 대학 때문에 먼저 서울에 왔고 나는 2년 전에 서울로 와 겨우 자리를 잡아 같이 살고 있는데, 둘 다 짝을 못 만나고 있으니 고향의 부모님은 명절마다 ‘왜 결혼을 안 하느냐’고 성화다.” 그때마다 임씨는 지금 월급으로는 결혼 준비할 돈도 모으기 어렵다고, 남동생은 만날 수 있는 상대가 없다고 푸념한다. 자녀세대인 청년들이 떠난 자리에는 부모세대인 장·노년층만이 남아 지역경제도 생활환경도 발전이 멈춰 있다. 임씨는 “그렇다고 구미에 계속 있었다고 해도 별반 나을 건 없는 것이, 같은 직장이나 동네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한 친구들도 일자리가 사라져 경기도로 이사한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혼해서 애 낳는 여건은 점점 나빠져 갈수록 늘어가는 1인 가구가 지역과 연령에 따라 다른 비중을 보인다는 점에서도 이 같은 양극화의 단면을 찾을 수 있다. 대도시 중 1인 가구 비율이 가장 높은 서울에선 30대 이하 1인 가구 수만 2020년 기준 59만8000여 가구에 달한다. 2010년 47만4000여 가구에 비해 크게 늘었다. 1인 가구 비율이 30%를 넘는 시·도는 서울 외에는 대부분 농촌 중심의 광역지자체다. 이들 지역에선 도시와 달리 60대 이상 1인 가구의 비중이 가장 높다.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떠난 청년 1인 가구로 인해 지역이 먼저 소멸 위기를 걱정해야 할 가족 해체를 겪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울과 수도권 역시 같은 문제를 순차적으로 겪게 될 공산이 높아지는 셈이다. 결국 해법은 대규모 고용을 책임지며 가족과 인구 재생산 역할을 맡던 지역 산업도시의 활로를 찾는 한편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의 고용 및 생활환경 양극화를 해결하는 포괄적인 방향에서 찾아야 한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지역의 산업구조가 바뀌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수도권에 집중된 교육환경을 해소하기 위해 지역의 거점 대학과 산업을 연계시키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양 교수는 “이미 제조업이 몰락하며 산업공동화 사태를 겪은 해외의 경우, 지역 대학과 공공 영역까지 연결시켜 지역에 계속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서 충격을 완화했다”고 말했다. 복합적인 문제인 만큼 세밀하게 설계된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가지 원인이 아니라 중첩된 문제 때문에 심각성이 높아지고 있으므로 부처와 지자체의 경계를 넘어 총체적인 가이드라인부터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박진경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구소멸지역 지원 특별법 토론회’에서 “수도권 인구 집중과 지방의 저출산·고령화, 20~30대 젊은 인구의 유출 등이 겹치면서 ‘지방소멸’ 위기는 가중되고 있다”며 “지역인구 활력 특별법 제정과 국가균형발전특별법 개정, 인구 감소지역의 포용적 성장 및 활력을 촉진하는 범부처 지역발전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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