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이산가족보다 예술단 교환 방문에 방점1983년 미얀마 암살 폭발 사건 후 처음 열린 남북 회담에서 양측 대표단이 고성을 주고 받으며 신경전을 벌인 기록이 2일 공개됐다.북한은 1983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노린 아웅산 테러 사건을 자행했다. 북한은 ‘남한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으나 국제사회는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북한과 우방국이었던 미얀마 정부는 북한과 단교 조치에 나섰다. 이를 돌파하고자 북한은 한·미가 참여하는 3자 회담을 제의했으나 한국의 반대로 불발됐다.
북한은 체육회담에서 삐라를 문제 삼기도 했다. 1차 회담에서 북측 대표단은 삐라를 남측 대표단 앞에서 흔들어보이며 항의했다. 북측은 “귀측의 정치발언과 삐라 사건이 본 회담을 정치에 이용하려는 하나의 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사료집에서는 김일성 주석이 북한을 이끈 1980년대만 해도 북한이 체제 경쟁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 드러난다. 적십자 회담에서 한국은 이산가족 재회에 방점을 둔 반면 북한은 남북 예술단의 교류를 우선시했다. 북한 예술단의 공연을 통해 체제 선전 선동을 하려던 것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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