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신륵사는 상당히 긴 역사를 간직한, 유서가 깊은 절이다. 그런 만큼 신륵사처럼 귀한 보물들을 간직한 절도 그렇게 많지 않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보물이다. 풍경도 다채롭다. 신륵사는 특히 대다수 다른 절들과 달리, 강변에 자리를 잡고 있다. 신륵사 강변 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여주를 대표하는 풍경 중에 하나로 꼽힌다.
천 년 역사를 간직한 고찰들이 대개 그렇듯이 신륵사도 대찰이었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배불정책으로 절의 위세가 크게 위축됐다. 그러다 1469년에 세종대왕릉인 영릉의 원찰이 된 이후 대규모 중창불사가 이어졌다. 성종 때인 1472년에 200여 칸의 건물을 보수하거나 신축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절의 규모가 왕궁에 버금갔을 것으로 보인다.물론 오늘 우리가 보는 신륵사는 그때와 다르다. 그렇다고 대찰의 면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신륵사에 남아 있는 보물들이 그런 과거의 위상을 짐작게 한다. 신륵사는 일종의 보물창고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신륵사에서는 보물을 찾는 것보다 보물이 아닌 것을 찾는 게 더 힘들다. 그동안 갖은 전란과 수난을 겪으면서 숱한 보물이 사라졌는데도 이 정도다.
조사당 앞에는 한눈에 봐도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향나무가 있다. 이 나무도 수령이 600년이다. 이 향나무도 다른 나무들 못지않게 풍모가 남다르다. 키는 낮지만, 옆으로 넓게 뻗은 가지와 거친 수피에서 진한 세월의 향기가 묻어난다. 이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허리를 수그려 손자를 품에 안으려고 하는 자상한 할아버지를 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4대강사업이 진행되면서 그 버드나무 군락지가 파괴되는 참사가 벌어졌다. 전란 속에 보물들이 사라지듯이, 사람들은 이때도 신륵사에서 보물이 사라지는 걸 안타깝게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신륵사 버드나무는 그렇게 쉽게 포기할 보물이 아니었다. 4대강사업이 끝난 뒤, 신륵사에서 버드나무 군락지를 복원하려는 노력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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