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오기 전까지 아파트 생활만 했다. 아스팔트 위만 걷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까지 이동하고, 집에 문제가 있으면 관리실에 전화해 도움을 요청했다. 이 삶이 엄청나게 편리하다거나 문제가 있다고 느낄 여지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아파트살이를 했으니 단순하고 기본적인, 남들도 살아가는 특별한 것 없는 거주 공간이 아파트였다.
여느 집들과 마찬가지로 벽마다 단열재가 추가되었다고 하나 벽에서는 언제나 찬바람이 새어 나와 냉장고 문을 열어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눈이 오는 날은 치우느라 온종일 중노동을 해야했다. 여기에 반전이 있다. 즐거움도 잠시, 앞마당을 뒤덮은 들꽃과 풀을 여름내 수시로 깎아야 하는 숙제가 발등에 불처럼 떨어진다. 풀이 우거지면 동물들이 더 자주 출몰하고 은신까지 한다. 며칠 전 태닝이라도 하듯 계단에 누워있는 뱀 한 마리를 보고 기겁을 하고 도망갔던 게 나였다. 앞마당이 숲속이 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미션은 잔디 관리이고, 이것 역시 참 노동의 영역에 포함된다.이뿐이면 다행이다. 난데없이 샤워실 구멍이 막혀 역류하고, 이층 어딘가에서 물이 새어 일 층 천장에서 '똑똑'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문제를 찾아 고쳐주는 해결사들은 부른다고 곧장 오지 않는다.
집 앞에 있는 호수는 그야말로 자연이 선사한 놀이터다. 바닷가에서 해수욕은 해봤지만, 호수에서 수영을 해본 건 태어나 처음이었다. 나와 아이들에게 호수는 도전 그 자체였다. 30도가 웃도는 날엔 하교한 아이들을 데리고 곧장 호숫가로 향한다. 미리 쪄놓은 옥수수를 호숫가에서 맛나게 먹고, 정신 없이 물놀이 하다 보면 바람이 살짝 서늘해지고 똑똑한 배꼽 시계가 신호를 보낸다. 5분도 채 안 되어 집에 돌아와 야무지게 저녁밥을 먹고 나면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둘러 꿈나라로 떠난다. 나는 해가 뜨기 직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을 좋아한다. 동쪽에서 해가 뜨고 세상이 어둠에서 주황빛으로 변하는 순간을 고요하게 바라보는 것이 나의 명상이자, 하루를 아름답게 시작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새벽녘에 우리 집 뒤뜰을 배회하며 풀을 뜯어 먹는 사슴과 열 마리가 넘는 칠면조 대가족이 뒤뜰을 우아하게 거니는 모습은 생경하기 그지없는 풍경이었는데 이제는 그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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