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휴게소에서 도보로 15분 거리, 인근 마을인 우산2리에서도 휴게소의 등장은 특별했다. 평평한 토지에 주택이 반듯하게 들어선 모습이 현대식이라며 '서울 마을'이라 불리기도 했던 우산2리는 금강 근처에 있지만, 지하수가 부족해 정작 농사는 어려워 가난했던 동네다. 하지만 금강휴게소가 지어진 이후부터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특히 현재 이곳 70~80대 여성들에게는 말이다.
1년에 두 번, 서울 강남에도 가보고 포항에도 갔던 기억이 나네. 체크 무늬 바지에 하얀 상의, 스카프와 명찰까지 유니폼도 있었지. 일하는 동안 돈 부족할 일은 없었어. 당시 월급이 90만 원 정도 됐고 때때로 보너스도 넉넉하게 나왔지. 덕분에 딸 셋, 아들 둘 오남매를 다 키웠어.""내 고향은 청성면 합금리고 23살에 이곳으로 시집을 왔네. 와보니 마을이 화목하고 깨끗한 것이 마음에 들었어. 휴게소에 취직하기 전까지는 집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했는데 간판은 따로 없고 과자나 술, 주전부리를 파는 식이었지. 한때 두부 장사도 했어. 집에서 두부를 만들어다가 팔았지. 저쪽 조령리 사람들이 주된 고객이었어.
마이산, 속리산으로 야유회 다녀왔던 것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네요. 명예퇴직하던 날, 사람들이 소감을 묻는데 '참 고생스러웠지만 덕분에 육남매를 다 키웠다'고 말했죠. 고마운 마음이에요."돌아가신 우리 아저씨가 금강휴게소 처음 생길 적부터 거기서 팝콘 가게를 했어요. 금강휴게소 내에 자리했다지만 개인 사업소였죠. 이름이 '금강 팝콘'이었는데 지금은 팝콘 맛도 이것저것 많다지만 그때는 딱 한 가지, 한 봉지에 200원씩 해서 팔았어요. 우리 말고도 오뎅, 핫도그, 커피 파는 가게가 또 있었어요.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바글바글 많았나 몰라요.
아무튼 우리 부부는 금강휴게소에서 맞벌이하며 생계를 꾸려나갔어요. 저는 낮에 일하고, 남편은 밤 근무를 하게 되는 바람에 한동안 만날 일이 거의 없던 시기도 있었어요. 당시 금강휴게소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 고민도 모두 집안일이었지요.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충실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말이에요. 그래서 때로는 남편과 식구들의 반대에 그만두는 이들도 많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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