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둘레, 내포땅 열 개 고을 중에 동쪽과 남쪽에 있는 고을이 예산이다. 예당평야가 있어 예로부터 농사가 풍족했다. 벼 9만 섬을 실어 날랐다 해서 붙여진 고덕면의 구만포 이름이 그냥 나온 게 아닌 것이다. 수로도 발달해서 교역의 중심지로 보부상 활동이 활발하였다.
추사 김정희는 예산 용궁리에서 났고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한 윤봉길도 예산 덕산 사람이다. 알려진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으나 3대에 걸쳐 의병활동과 독립운동을 한 수당 이남규와 장남 이충구,, 장손자 이승복은 예산 대술 출신이다. 이들 모두 내포 땅의 기질을 타고 난 사람들이다.수당 이남규의 본향은 한산이씨다. 대술면 한산이씨는 아계 이산해의 후손들이다. 이산해는 보령 출신으로 영의정을 두 번 역임한 북인의 영수였다. 보령은 낙향사족이 많은 고을로 한산이씨도 그중 하나였다. 한산이씨 보령 입향조는 이치로 이산해의 조부다.
문장력이 뛰어나고 지조가 굳센 수당은 구한말 굵직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상소로써 일제에 대항했다. 일본군의 철수와 토벌을 주장했고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는 일제를 규탄했다. 1905년 을사늑약직후에는 을사오적을 처벌하라 주장하였다. 1895년 단발령이 내려지자 이를 반대하여 관직을 버리고 예산으로 낙향하였다.1906년 홍주의병 때 의병대장 민종식을 물신양면으로 도왔으며 의병이 크게 패하자 민종식을 숨겨주는 한편 홍주탈환 작전본부를 구성하고 거사 준비도 갖추었다. 이를 알아챈 일본군은 수당과 의병활동을 함께한 이충구를 공주교도소에 투옥시키고 가혹한 형벌을 가하기도 했다.
수당의 손자 이승복이 13살 되던 해다. 목숨이 위태로워진 이승복은 13살의 나이로 7살 여동생과 4살 막내를 데리고 보령으로 피신했다 한다. 이승복을 두고 1923년 종로경찰서 폭파에 관여했을 때 피의자 조서에"13세 때에 조부 이남규와 부친 이충구가 반일 행동으로 일본 수비대에 의해 살해당한 이래 배일사상이 농후하게 되어 항상 조선 독립을 몽상하여온 자"라 했다.
대한민국 최근 뉴스, 대한민국 헤드 라인
Similar News:다른 뉴스 소스에서 수집한 이와 유사한 뉴스 기사를 읽을 수도 있습니다.
출처: SBS8news - 🏆 4. / 63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출처: joongangilbo - 🏆 11. / 53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출처: OhmyNews_Korea - 🏆 16. / 51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출처: newsvop - 🏆 6. / 63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출처: OhmyNews_Korea - 🏆 16. / 51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출처: newsvop - 🏆 6. / 63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