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바닷바람이 이인재의 뺨을 붉게 했지만 그는 선상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태극 문양을 한 완장을 오른팔에 차고 머리띠를 한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정면만을 응시했다. 무표정한 듯한 그의 얼굴과는 다르게 그의 가슴은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군함이 왜 이렇게 천천히 가지?'라는 답답함이 항해 내내 그의 머리를 괴롭혔다.
특히 임자교회 이판일 장로와 그 가족, 성도들이 몰살했다는 소식에 전남 목포의 기독교계와 지역사회는 발칵 뒤집어졌다. 이인재는 28세라는 젊은 나이였지만 임자교회 이판일 장로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부역자 색출위원장'이라는 감투를 썼다. 전남 무안군 지도에서 아침을 먹은 백부대는 임자도 근처에 와서 함포사격을 퍼부었다. 지방 좌익들의 저항은 없었고, 진리선착장에 상륙한 백부대원들은 삼삼오오로 흩어져 부역자라고 의심되는 이들을 잡아들였다.백부대원들이 부역자들을 붙잡기 위해 눈이 충혈되었다면 이인재는 애초에 그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군함에서 내리자마자 면소재지인 진리 자신의 집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숨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설마 모두 죽기야 했을라고'라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다.
이인재는 이미 파헤쳐진 구덩이 속에서 가족들을 찾느라 눈이 벌겋게 충혈되었다. 옆에서 도와줄 이가 하나도 없었다. 자신은 목공예사업을 하느라 목포에 가 있어서 화를 면했지만, 임자도에 있던 가족들은 몰살됐기에 시신 수습을 도와줄 이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잡혀 온 이들과 광장 한가운데 세워진 이들조차 부역자의 가족일 뿐, 학살에 직접 관련된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만 군인들은 옥석을 가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광장에 운집한 주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위 '빨갱이 가족'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는 이들은 모두 인공시절 완장 찬 이들에 의해 가족을 잃은 이들이었다.
임자교회를 설립한 문준경 전도사는 평소에"예수 믿는 사람은 늘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동시에 예수님의"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라는 마태복음 5장 44절의 말씀이 떠올랐다. 어떤 욕설도 없었고, 원망의 소리도 없었다. 가족 13명의 죽음에 그 여성이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 하더라도 6.25 전부터 좌익활동을 하고 인공 때 여성동맹 활동을 했던 가족의 원수를 앞에 두고 이인재가 한 것은 뺨따귀 한 대가 전부였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을 몸으로 실천한 이인재는 부역자 구명운동을 본격적으로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을 이장에 자원한 그는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 광목을 찢어 태극 문양의 완장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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