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깡패가 밀착했던 이승만 집권기를 반영하는 한 장면이다.한국인들이 폭력 조직을 깡패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이승만 집권기 때다. 갱이 들어간 깡패라는 표현은 이 시기부터 유행했다.방성수 조선일보사 기자가 쓴 는"검찰의 내부 교육자료에 따르면, 깡패란 말은 1945년 해방 이후 미군부대 주변의 구두닦이들이 영어의 gang을 우리식 발음으로 '깡'이라고 읽고 여기에 전통적인 패거리를 지칭할 때 사용하던 패자를 합해 비속어로 사용한 데서 유래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설명한다.이정재의 측근인 유지광은 깡패라는 용어가 1953년부터 유행했다고 생각했다.
이 세력이 집결한 곳이 이승만의 여당인 자유당이다. 한국전쟁 발발 1년 반 뒤인 1951년 12월 23일의 자유당 창당은 이승만이 전쟁의 혼란을 활용해 지지 기반 확충에 성공했음을 보여준다.그런데 이승만은 자유당에 100%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도와 자유당을 창당한 한국광복군 참모장 출신의 이범석과 그를 따르는 족청계의 파워가 불편했다. 장기집권을 위한 1952년 헌법 개정을 위해 이범석을 내무부장관으로 기용해 국회를 무력화하고 개헌을 성사시킨 이승만은 그 뒤 곧바로 이범석 축출에 착수했다.임시수도가 부산에 있을 때 자행된 이승만의 불법 개헌은 부산정치파동으로 불린다. 이때 이승만을 도운 이범석은 그 여세를 몰아 그해 8월 5일의 대통령선거에 이승만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했다.그런데 이승만은 자신의 러닝메이트를 돕지 않고 무소속 대통령후보 함태영을 도왔다. 이 과정에서 경찰력이 함태영의 당선을 위해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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