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에는 본가에 가지 않기로 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집콕’이다. 같은 지방 출신의 친구들끼리는 은밀한 기쁨을 나누었다. 안 가? 야 너도? 야 나도! 만나는 횟수가 일 년에 몇 번 안 되고 기다리는 마음을 알면서도, 연휴가 온전히 내 것이라는 사실에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을 수 없었다.
나에게는 할머니 두 분이 있었다. 우리집은 외할머니나 친할머니라는 표현 대신, 할머니의 성을 써서 각각 주 할머니, 배 할머니라고 불렀다. 주은협은 엄마의 엄마고, 배영희는 아빠의 엄마다. 은협과 영희. 내 살과 뼈가 갈라져 나온 뿌리이자, 나를 어떤 부당함과 서러움으로 푹 찌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알싸한 연민과 달콤한 편애의 맛을 알려준 ㅇㅎ과 ㅇㅎ. 한 ㅇㅎ은 4년 전 세상을 떠났고 한 ㅇㅎ은 방역 문제로 면회가 금지된 요양병원에 있다. 타지로 나오면서부터는 정말로 명절에 보는 게 거의 전부였던 두 여자를 나는 사랑하고 원망하고 그리워했다. 그러니까 이건 당신들이 평생 불릴 일 없었던 이름으로 ㅇㅎ을 애도하는 나만의 차례이자, 또 다른 ㅇㅎ에 대한 기억을 세상에 남겨놓으려는 인사.
엄마는 꽤나 등골이 서늘했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렇게나 다정하고 보드라웠던 ㅇㅎ이, 자라고 나서 보니, 좋은 시어머니는 아니었다. 지금 네이트판에 올라갔다가는 당장 이혼하라는 댓글이 우세할 정도로 엄마의 시집살이는 꽤 매웠다. 그때는 그런 경우가 보통이었다지만, 시대적 기준이 낮은 것이나 내가 ㅇㅎ을 사랑하는 것은 ㅇㅎ이 시어머니로서 잘못한 사실을 중화할 수는 없다. ㅇㅎ 역시 보통의 인간처럼 다양하고 입체적이다. 그 면면은 ‘할머니’라는 표상으로 납작하게 짓뭉개고 온화함 혹은 고집 센 시어머니로 축약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내가 태어나자마자 또 딸이라고 상을 엎어버린 ㅇㅎ은 그러나 서른 넘은 내가 온다는 소식에 ‘차븐 것’을 사러 유모차를 밀고 나갈 만큼 나를 끔찍하게 사랑하기도 했으니까.
내가 개인으로서의 ㅇㅎ을 마주한 것은 ㅇㅎ의 남편이자 엄마의 아빠, 그리고 나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여름이다. 장례식이 끝난 후 나는 일주일간 ㅇㅎ의 집에 머물렀다. 사람이 하루 만에 이렇게 폭삭 늙을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평생 봐온 ㅇㅎ의 얼굴이 몹시 낯선 차였다. 여름 해는 길었고 농사일을 하지 않는 낮 시간은 그 집에서 처음 생기는 공백이었다. ㅇㅎ은 아주 오랫동안 흔들었다가 뚜껑을 연 콜라처럼 언제든, 어디에서든 속 이야기를 엎질러 놓았다. 그중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장남에게 시집 보낸 딸이 아들을 낳지 못해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할까봐 무서웠던 ㅇㅎ, 우리가 태어나고서야 농가의 장녀로서 몰아붙였던 엄마가 그때 얼마나 어렸고 힘들었는지 깨닫고 후회한 ㅇㅎ, 실수로 창고에 불을 내 한 해 농사를 날리게 되자 목을 매려다 우연히 살아났던 ㅇㅎ, 할아버지가 미웠는데 왜 지금 후련하지 않은지 모르겠다는 ㅇㅎ…. 나는 스무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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