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 10월12일 아메리카의 서인도제도에 첫발을 내디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자신을 후원한 페르디난드와 이사벨라의 스페인 왕실 깃발을 들어보이고 있다. 선원들의 일부는 땅에서 금을 찾고 있고, 원주민들은 나무 뒤에서 상륙자들을 지켜보고 있다. 이 그림을 그린 존 밴덜린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파리 유학을 다녀온 화가이다.
1492년 10월12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히스파니올라섬에 첫발을 내딛는다. 콜럼버스가 최초로 건설했던 기지 ‘라 이사벨라’는 오늘날 거의 잊혔다. 콜럼버스 역시 존경의 대상, 기념할 만한 인물로도 여겨지지 않는다. 그는 제국주의의 앞잡이였고, 아메리카의 원래 거주자들에게 재앙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근현대사의 다른 각도에서, 막대한 변화를 몰고 온 인물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온 세상의 에코시스템을 뒤섞고 충돌시킨 ‘콜럼버스적 대전환’이 공룡 멸망 이후 가장 중대한 생태적 사건이라는 것이다.담배·가축·감자·말라리아·노예무역…인간 유전자의 섞임까지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넌 것은 콜럼버스와 그의 선원들만이 아니었다. 가지각색의 벌레와 식물, 포유류, 그리고 미생물까지 함께 아메리카에 입성했다. 유럽인 원정대는 소, 양, 말 같은 가축들은 물론이고 사탕수수, 밀, 바나나, 커피와 같은 작물을 새로 들여놓았다.
1572년 봄. 세 척의 중국 정크선이 필리핀에 모습을 드러냈다. 배에는 실크와 도자기 등 최고급 중국 상품이 가득했다. 레가스피가 가지고 있던 것은 안데스산맥의 포토시 은광에서 가져온 스페인의 은. 은본위 통화제도를 도입한 중국의 은에 대한 굶주림과 유럽의 실크와 도자기에 대한 굶주림이 맞아떨어지면서 교역량은 천문학적으로 불어났다. 훗날 ‘갤리온 무역’으로 알려지게 될 이 교역은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아메리카, 좀 덜 직접적으로는 아프리카까지 하나로 연결해냈다. “단 하나의 교역망 안에 이처럼 넓은 지표면이 편입된 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자국의 화폐가 오랑캐들 손에 맡겨지게 된 중국은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유럽에선 제조업이 붕괴 위기에 처하는 등 정치사회적 변화가 이어진다. 이전 세상과 분명한 선을 긋는, 근대의 동이 터오른 것이다.
아메리카 인디안의 영토를 빼앗은 댓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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