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사과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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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격 실화냐?” 사과 한 알에 5000원이 넘는 걸 보고 눈을 의심했다. 결국 마트 한 편...

“이 가격 실화냐?” 사과 한 알에 5000원이 넘는 걸 보고 눈을 의심했다. 결국 마트 한 편에 마련된 세일 코너에서 흠집 있는 사과 네 알에 5600원 하는 꾸러미를 샀다. 흠과라도 맛만 좋으면 되지. 결과는 꽝. 달콤한 맛을 상상하며 한 입 베어 물었지만 백설 공주도 마다할 ‘무맛’이었다. 사과뿐 아니라 좋아하던 수박과 복숭아도 올해는 큰마음 먹고 샀다가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기후 변화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진 감자, 포도, 사과의 타격이 컸다. 사과의 경우 사과꽃이 진 자리에 맺히는 ‘착과수’가 올해 무려 16%나 감소했다고 한다. 고온 현상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긴 장마에 탄저병까지 덮쳤다. 다른 과일도 마찬가지다. 생산량도 당도도 줄었다. 6월이면 만날 수 있는 포슬포슬한 감자도, 여름의 상징 수박도,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아삭하고 달콤한 사과도, 껍질과 씨 때문에 귀찮긴 하지만 자꾸 손이 가는 새콤달콤한 포도도 이제는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된 것이다. 풍작인 해가 있으면 흉작인 해가 있기 마련이니 내년에는 다시 맛있는 과일을 먹을 수 있을까?

물론 과일이 당장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기후 위기로 인한 변화는 재난 영화처럼 갑자기 닥치지 않는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곰팡이가 퍼지는 것처럼 찾아올 것이다. 몇년 전까지 봤던 꽃이 어느 해부터 보이지 않고, 사과나 포도의 자리는 동남아 지역에서나 볼 수 있었던 패션푸르트와 파파야가 차지할 것이다. 그 변화가 더 빨라지고 있는 게 문제다. 올해 사과가 잘 팔려 ‘없어서’ 못 파는 게 아니라 정말 없어서 판매를 못할 정도로 수확량이 줄었다고 한다. 사과의 고장인 경북 지역에 살던 농부가 사과 농사를 지속하기 위해 강원도로 이주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나마도 비싸서 사 먹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올해는 추석 선물로 고기 대신 과일을 샀다. 그만큼 ‘고급’ 선물이 된 셈이다. 이미 과일은 누군가에게 쉽게 사기 힘든 사치품이 되었고 이런 일은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과일 선물을 사며 이런 생각을 해봤다. 기후 위기 시대에는 과일이 ‘계급’을 가르는 척도가 되지 않을까?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는 과일을 제한 공급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1인당 사과 한 알과 포도 한 송이만 구매할 수 있게 한다거나, 계급에 따라 차등을 둬서 과일을 배급하는 풍경을 상상해 보자. 과일 때문에 국가 간 분쟁이나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는 또 어떤가? 단지 과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과일, 곡물, 수산물 등 땅과 바다에서 공급되는 것들의 위기는 인간과 사회의 위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계절마다 찾아오는 생명이 고마운 줄 모르고 너무 오래 땅의 일에 무심했으며 심지어 무시해 왔다. 땅의 안녕과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려 ‘생태적 경각심’을 가지면 어떨까? 물론 개인이 맞서는 일로는 부족하다. 기후 위기 시대의 농업을 위해 정부는 기후 대응 정책을 강화해야 할 것이며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를 관련업 종사자 개개인이 힘겹게 감내하지 않도록 피해 보상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복숭아와 사과를 먹기 어려워진 다음에야 이런 생각을 해서 송구하다. 너무 늦지 않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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