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 체제는 당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임시로 구성하는 당 지도부입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국민의힘에 비대위를 둘 정도의 '비상상황'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비대위는 실체적 하자가 있다고 봤습니다.국민의힘에서는 지금껏 비대위가 여러 차례 세워졌습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비상상황'이 얼마나 심각했기에 비대위 체제가 가능했을까요.
하지만, 지금과 같은 의미의 '전권 비대위'의 시작은 2011년 12월, 박근혜 비대위 체제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은 당헌 보칙 111조를 신설, 비대위에 선출 지도부와 같은 권한을 부여했습니다."당 대표가 궐위되거나 당내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최고위원회의의 기능이 상실될 경우, 비대위를 구성해 최고위 권한을 위임 받는다"는 내용입니다.그러면, 2011년 12월 비대위 체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0년의 국민의힘 비대위의 역사를 훑어보겠습니다.2011년 말, 당시 한나라당은 10.26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시장을 내주고, 선관위 디도스 공격 파문까지 일면서 몸살을 앓았습니다. 당시 친박계를 중심으로 홍준표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홍 대표는 저항했지만, 선출직 최고위원이었던 유승민, 원희룡, 남경필 최고위원이 사퇴를 선언하자, 결국 홍 대표는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같은 해 말,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본격화됐습니다. 새누리당은 창당 이후 최대 위기를 맞습니다. 12월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친박계였던 이정현 대표는에 대한 사퇴 요구가 빗발쳤고, 결국 12월 16일, 사퇴를 발표했습니다. 그렇게 목사 출신의 민주화 운동가, 인명진 비대위 체제가 세워졌습니다. 당명도 '자유한국당'으로 바꿨습니다. 2020년 4월 비대위는 총선 직후 있었습니다. 미래통합당은 4·15 총선에서 역대 최악의 성적을 거두게 됩니다. 당시 비례 정당인 미래한국당과 합해 103석을 얻는 게 그쳤고,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은 국회 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180석을 얻어냈습니다. 그리고 세워진 게 지금 비대위 체제입니다. 이준석 전 대표는 성 접대 의혹으로 윤리위원회에서 당원권 정지 6개월을 받았습니다. 국민의힘은 당 대표가 당원권이 정지된 상황을 비상상황이라고 보고 주호영 비대위 체제를 내세웠습니다.그간의 비대위 체제 수립에 정당성을 부여한 당의 '비상상황'은 모두 선거와 맞물려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선거에 참패했거나, 혹은 선거 패배가 예상될 때 비대위 체제가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계파 갈등이 존재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권력 체제의 전환은 곧 주도권 싸움이기 때문에, 선거 패배를 지렛대 삼아 상대 계파를 공격하는 명분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최근 뉴스, 대한민국 헤드 라인
Similar News:다른 뉴스 소스에서 수집한 이와 유사한 뉴스 기사를 읽을 수도 있습니다.
출처: SBS8news - 🏆 4. / 63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출처: OhmyNews_Korea - 🏆 16. / 51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출처: joongangilbo - 🏆 11. / 53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출처: kyunghyang - 🏆 14. / 51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출처: kyunghyang - 🏆 14. / 51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출처: yonhaptweet - 🏆 17. / 51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