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회사가 밀집한 싱가포르의 중앙업무지구 래플스 플레이스역. 출근시간인 오전 8시50분, 지하철이 도착할 때마다 전세계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시간에 쫓기며 발걸음을 서두르는 건 한국 직장인들과 다르지 않았지만 생김새는 모두 달랐다. 히잡을 둘러쓴 말레이시아인, 파란 눈의 미국인, 터번을 쓴 인도인은 물론 중국인, 싱가포르인까지 모습은 제각각이었지만 일상인 듯 아무렇지 않게 저마다 회사로 향했다.
다국적 기업의 정보통신 글로벌팀 채용을 담당하는 한 임원은 “싱가포르에 좋은 일자리가 많으니 사람이 모이고, 인적 자원이 풍부하니 다국적 기업이 더 많이 들어오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제일 강력한 경쟁자가 홍콩이었는데 지금은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났다”고 말했다. 정치불안으로 글로벌 기업들의 ‘탈홍콩’이 급증했는데 싱가포르가 이를 흡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기업 뿐 아니라 세계의 거부들도 돈을 싸들고 싱가포르를 향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부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2008년 상속·증여세를 없앴다. 양도세와 배당세도 없고, 법인세와 소득세 부담 역시 상대적으로 낮다. 돈과 사람이 몰리니 인재 경쟁력은 자연스레 높아졌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이 발표한 2023년 ‘세계 인재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종합 2위, 아시아 지역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종합 24위에 그쳤다.
싱가포르는 일찌감치 개방정책을 활용해 현지 노동력 부족 문제를 완화하고 인구규모를 늘려왔다. 그 결과 인구는 2000년 403만명에서 2020년 569만명으로 약 40% 늘었다. 영어가 유창한 인재를 쉽게 확보할 수 있고 아세안 지역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아시아 본사 유치에도 적극 힘써왔다. 구글, 애플 같은 글로벌 테크기업들 아시아 지역본부는 물론, 동남아시아의 우버인 ‘그랩’ 본사와 아시아의 아마존인 ‘쇼피’ 본사도 모두 싱가포르에 있다. 독일은 지구 반대편 한국에까지 ‘러브콜’을 보낼 정도로 인재 유치에 적극적이다. 한국인의 자국 이주를 확대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조치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 저소득국가 국민과 난민을 이민정책 대상으로 삼았던 독일도 교육수준이 높고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한국을 새 이웃으로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드리안 하이어만 베를린 인구개발연구소는 “인류역사로 볼 때 국경이 생긴 것은 극히 최근이며 인류의 역사는 곧 이주의 역사”라며 “인구문제 해법 측면에서 이민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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