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실종자’ 당시 17살 임옥환군 어머니 김진덕씨 5·18민주화운동 당시 아들이 실종된 김진덕씨. 김진덕씨 제공 “죽기 전에 우리 아들 뼛조각이라도 찾아야 할 텐데…. 전두환 고놈이 말 한마디 않고 뒤져부러 속이 터지요.” 전남 고흥에 사는 김진덕씨는 24일 와 한 통화에서 분노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 아들 임옥환군은 1980년 5월 고흥 집으로 가기 위해 친구들과 자취를 하던 절을 나섰다가 지금까지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김씨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난리가 났다는 소식에 매일 옥환이와 전화통화를 했다. 19일 저녁 ‘엄마, 나는 괜찮응께 걱정 말어’라고 옥환이가 말했는데, 이게 마지막 통화였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임군과 전화 연락이 되지 않자 22일 광주를 찾았다. 버스가 다니지 않아 화순에서부터 걸었다. 임군이 머물던 절에서 “옥환이가 21일에 집에 간다고 나갔다”는 말을 듣고 김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실종된 임옥환군. 국립5·18민주묘지관리소 제공 훗날 임군과 함께 자취방을 나섰던 친구는 산을 넘던 도중 총소리가 들려 모두 흩어져 도망간 게 임군과의 마지막이었다고 했다. 아버지 임준배씨는 5·18행방불명자 가족회 회장을 맡았고, 김씨 가족은 다른 5·18 희생자 유족과 함께 “아들을 찾아내라”며 광주, 서울 등을 돌며 투쟁에 나섰다. 그때마다 김씨 가족을 감시하고 있던 읍사무소 직원은 “가지 말라”고 말렸다. 김씨에게는 읍사무소 직원이나 전두환이나 똑같이 나쁜 사람으로 보였다. 5·18 연구자들은 임군 실종이 진압군으로 내려와 있던 7공수여단과 관련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계엄군은 1980년 5월21일 옛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이후 시민 저항이 거세지자 광주 외곽 차단작전을 펼쳐 광주를 고립시킨다. 조선대에 주둔하고 있던 7공수여단은 이날 오후 조선대 뒷산을 따라 광주~화순 경계지역인 너릿재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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