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육성 회고록 〈21〉 ‘DJP 연합’에 올라탄 나, 김대중의 대권 레이스는 순풍에 돛을 단 듯 순조로웠다. 생애 네 번째 대권 도전이던 1997년 15대 대선 초반에는 그랬다.
“이 사건을 수사할 경우 대선을 불과 2개월 앞둔 시점에서 극심한 국론 분열, 경제 회생의 어려움과 국가 전체의 대혼란이 분명하다고 보이고, 대통령 선거일 전에 완결하기도 불가능하다.” 나는 IMF 재협상을 주장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당시 IMF니 뭐니 잘 몰랐다. 미국 교포 출신 학자가 “IMF는 아르헨티나 등 어디나 얼마든지 재협상을 한다”고 조언했다. 잘못된 어드바이스인 줄도 모른 채 TV토론에서 IMF 재협상론을 폈다. 조순씨의 행보는 안타까웠다. 그는 내가 탈당한 민주당에 재입당해 총재직과 대선후보직을 받고 대선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지지도가 한참 밑돌자 후보를 사퇴하고 이회창의 신한국당과 합당해 한나라당을 창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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