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천재’ ‘피카소의 대항마’로 불렸던 프랑스 화가 베르나르 뷔페는 행운아인 동시에 비운아였다. 피카소에 비견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추상미술이 주류를 이루던 프랑스 미술계에서 차가운 외면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2019년에야 뷔페의 회고전이 처음으로 열렸다. 앤디 워홀이 “파리에서 마지막으로 유명한 화가”라고 일컬었던 뷔페의 매력은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이 생소하지만 뛰어난 작가의 작품 세계에 매료된 관람객들은 ‘n차 관람’을 이어갔고, 15만명의 관람객이 찾아 성황을 이뤘다.
‘천재의 빛’ 섹션에서는 뷔페가 그러낸 인물화를 선보인다. 뷔페는 ‘나’는 무엇이고 어떻게 존재하느냐는 실존적 질문에 천착하며 이를 인물화로 그려냈다. 초점 없는 눈동자, 영혼이 증발한 표정, 길쭉하게 늘어난 신체, 뻣뻣한 인물의 표현은 전후 인간의 불안과 피폐함을 반영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뷔페에게 붓질은 불안정했던 자신을 지켜내고자 하는 생존본능과도 같은 것이었다. 당대에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스타일의 그림은 대중의 인기를 얻었고, 뷔페의 그림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폭동과 같은 수준이란 이야기까지 전해진다. 장 콕토는 “피카소가 두려워하는 것은 뷔페의 재능뿐이다”라고 말했다.
단테의 문학, 종교, 신화 속 인물들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그림들을 선보였다. 세르반테스의 역시 뷔페가 즐겨 그린 작품이었다. 돈키호테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뚜렷한 목표 의식과 확고한 의지가 있었으며, 좌절하는 법이 없었다. 이런 점은 추상미술이 주류를 이룰 때에도 자신만의 구상회화를 고집스럽게 그려나간 뷔페와 닮았다. 뷔페는 평단의 혹평 속에서도 “증오와 비평은 가장 놀라운 선물”이라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굽히지 않았다. 베르나르 뷔페, ‘생트로페, 항구’, 1978, Gravure a la pointe seche, 57x76cm, Bernard Buffet뷔페와 40년을 함께했던 아내이자 예술적 동료였던 아나벨을 그린 그림과 아나벨의 책과 음반 표지 등도 볼 수 있다. 아나벨과 뷔페는 서로의 상처와 우울 등을 공감하며 영혼의 안식처가 되어줬다. 뷔페는 가수이자 배우, 작가였던 아나벨의 책과 음반 표지 그림을 그렸고, 아나벨은 뷔페의 전시회를 위한 서문을 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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