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교화소에서 온갖 병을 짊어지고 돌아온 아버지와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을 먹여살리기 위해 그는 1998년 중국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한 중국인 가정집에 팔려 강제결혼을 했다. 여러 차례 탈출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좌절된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중국 공안에 잡혀 북송될 위기에 처했다. 그의 시부모는 집안의 모든 재산을 끌어모으고, 주변에 빚을 져 그를 감옥에서 빼냈다. 비록 돈을 주고 그를 산 사람들이었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의미의 은인이 됐다. 적어도 북송돼 정치범수용소에 갇히고, 남아있던 가족이 처벌받을 위험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1994년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선희씨는 고난의 행군이 이어진 그 4년을 “지옥과도 같았다”고 했다. 사람이 쉴새없이 죽어나갔다. 먹을 것을 구하러 떠난 사람들이 죽어서 돌아왔다. 예뻤던 동무가 꽃거지가 돼 있었다. 그의 집도 무너져갔다. 어머니는 47세가 되던 해 결국 눈을 감았다. 아픈 아버지와 여동생이 그의 몫으로 남았다. 선희씨는 작가가 될 수 없었다. 대신 지리 탐사대에 들어가 지도를 그렸다. 그 일이 돈이 될 리가 없었다. 아픈 아버지를 위한 수입 의약품은 너무 비쌌다. 한 번에 사나흘씩 집을 비워 먹을 것을 구하고, 아버지의 약을 구했다. 동생은 떡과 빵을 만들어 팔았다.
압록강을 넘어 중국땅을 밟은 그는 중국인들에게 손발을 써가며 “일을 달라”고 했다. 중국어는 한마디도 할 줄 몰랐다. 그 사이 한 중국인이 그를 자신의 친척집에 팔아넘겼다. 그의 몸값은 4000위안이었다. 인신매매 전문 브로커에게 잡히지 않은 것을 불행 중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그가 팔려간 집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었다. 남편은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다. 시어머니는 눈이 멀어가고 있었다. 그는 소처럼 일했다. 밤낮없이 일하고 또 일했다. 일을 아무리 해도 돈은 모이지 않았다. 은희는 그가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됐다. 탈북자가 운영하는 식당일을 하며 밤낮없이 돈을 벌었다. 5년 만에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던 1만4000위안을 다 갚는데는 꼬박 13년이 걸렸다. 선희씨는 “아무리 갚아보려 해도 원금에 리에리가 붙고 리에리가 붙었다”고 했다.조금 살 만해졌다 싶었을 때 불행은 또다시 그를 흔들었다.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가 부러졌다. 가해자는 무일푼이었다. 차는 폐차 직전의 차였다. 두 차례에 걸친 남편 수술비와 치료비가 고스란히 그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빚을 갚고 모아뒀던 돈을 모두 병원비에 쏟고도 돈이 모자랐다. 이리저리 돈을 꿨다. 남편 몫까지 돈을 벌어야 했다. 아이를 키우고, 빚을 갚고, 간병을 했다. 그의 2년이 그렇게 또 흘러갔다.
'탈출, 인신매매 그리고 19년' 민족의 비극이다. 한편 나라가 디비진다. 💀국정원 해킹사건(빨간 마티즈 자살)에 연루된 이낙연(총리)과 서훈(국정원장)이 긴급체포되며 구속된다(사유는 메인트윗의 '이 스레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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