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학교에서의 나의 첫 번째 철학 수업은 '서양고전철학 읽기'였다. 지혜학교 수업은 필수수업과 선택수업으로 나뉜다. 말 그대로 필수수업은 해당 학년이면 반드시 들어야 하는 수업이며, 선택수업은 학생들의 관심사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수업이었다. 당시 필수수업은 소장 및 선배 연구원들이 이끌었고, 나는 새내기 연구원으로서 선택수업을 개설해서 진행할 수 있었다.
첫 수업부터 뭔가 꼬였고, 시간이 지나도 꼬인 수업은 풀리지 않았다. 수업이 거듭될수록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학생들은 나와 함께 한 학기 동안 '위대한 데카르트'를 읽긴 했으나, 그래서 데카르트가 어떤 생각을 왜 주장했는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역사적 상황도 뒤죽박죽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 생각해도 그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학교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인문통합수업'에 참여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인문통합수업이란 인문학의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2~3명의 교사들이 협력하여 수업을 구성하고 진행하는 수업이다.
"처음에는 사랑 이야기라고 해서 관심이 갔는데요. 그런데 별로 재미없어요." 이런 피드백을 받아 든 나와 동료 교사들은 이제 '의미'는 과감히 내려놓고 '재미'만을 생각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를 다듬어서 이런저런 콩트도 만들었다. 교사들은 교실 여기저기를 뛰어다녔고 학생들은 깔깔 웃었다. 그 학생들이 무엇을 얻어갔는지 알 수는 없다. 지금 생각하면 그 학생들에게도 미안하다. "…… 그런데 별로 재미없어요" 이 말이 어떤 뜻을 함축하고 있는지는 수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어스름하게 알 것 같았다. 저 짧은 표현을 풀어쓰면 다음과 같다."플라톤이니, 데카르트니 사랑이니 구원이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은 알겠는데요, 그게 저한테 무슨 의미가 있는데요?" 이는 단순히 학생들의 관심이나 흥미, 재미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의 관점에서 자신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었다.
그제야 학생들의 삶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에 재잘거리는 우스갯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무엇에 울고 웃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여기는 120여 명의 학생들이 오며 가며 여러 가지를 배우고 익히는 '학교'이기도 하지만, 함께 모여 앉아 먹고 자는 '집'이자, 뜻을 모아 함께 일을 만들다가 맘이 부딪혀서 싸우고 또 멋쩍은 표정으로 화해하는 '놀이터'이기도 했다. 둘러앉아서 미래의 삶에 대해 불안을 나누기도 하고, 과거의 빛나는 기억들을 꺼내며 추억하기도 하는 '쉼터'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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