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미국이 끊임없이 부딪히면서 중동은 물론 세계의 정세를 불안하게 한다. 중동에 에너지를 의존해야 하는 한국으로선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다. 두 나라는 전쟁을 치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서로 가장 증오하는 나라가 되었을까. 여기에는 오랜 원한과 증오의 축적이 자리 잡고 있다. 친이스라엘 정책에 국민 등 돌려미움·한풀이 악순환 고리 끊어야 2015년 이란 수도 테헤란 시내에서 시위대가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를 불태우고 있다. 국기 훼손은 모욕을 부르고, 모욕은 증오와 원한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위키피디아]민족주의자 이란 총리, CIA가 53년 몰아내 제2차 세계대전 뒤 현대사에서 이란인이 미국에 큰 반발을 갖기 시작한 근원은 1953년 모하마드 모사데그 총리 축출 사건이다. 민족주의자였던 모사데크 총리는 외국 기업이 지배하던 이란 석유산업을 국유화하려고 시도했다.
이란의 무하마드 레자 샤 정권은 반이스라엘로 일관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우드 왕가와 달리 친이스라엘 정책도 추구했다. 군주제 이란은 터키에 이어 무슬림 국가로는 둘째로 이스라엘과 대사급 관계를 수립하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1967년 6일전쟁에서 이집트·시리아·요르단·레바논 등 아랍권이 24만의 병력, 2500여 대의 전차, 950여 기의 항공기로 병력 10만, 전차 800여 대, 항공기 300여 대의 이스라엘을 공격했다가 6일 만에 궤멸적인 타격을 입은 전쟁이다.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요르단으로부터 이슬람 성지인 알아크사 모스크가 포함된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 이집트로부터 시나이 반도와 가자지구, 시리아로부터 골란고원을 빼앗았다. 아랍어를 쓰는 아랍권은 물론 대부분의 이슬람권은 일제히 분노와 허탈감에 빠졌지만 이란은 이 전쟁 뒤에도 이스라엘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1979년 11월 이란 대학생들이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직원들을 인질로 잡았다. 미국 대사관과 이란 외교부에서 미국인 66인 명이 444일간 억류됐다가 풀려났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구출 병력을 보냈으나 사막에서 헬기가 추락해 인명피해를 나면서 본격적인 작전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미국과 이란의 국교는 1980년 4월 공식 단절됐다. 1979년 이란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에 진입한 대학생들에게 잡혀 인질이 된 미국인 경비병과 지원. 이 참사를 목격한 미국인들의 가슴에는 이란에 대한 증오와 원한이 쌓았다. [위키피디아]
테헤란에서 미국인 인질극이 진행되던 1979년 미국에서 열린 한 시위에서 참가자가 '모든 이란인을 추방하라. 내 나라에서 나가라'라는 글을 쓴 종이를 들고 있다. 증오는 증오를 불렀다. [위키피디아]이란, 이란-이라크 전쟁 미국 사주로 의심 인질극 와중인 1980년 9월 이란과 국경을 맞댄 이라크가 국경문제를 시비 걸며 이란을 공격해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해 1988년 7월까지 거의 8년을 끌었다. 이라크는 10만~50만 명의 군인이 전사하고 1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숨졌지만, 이란도 12만~60만 명의 군인이 전사하고, 1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됐다. 전쟁은 이라크에 5610억 달러, 막 이슬람혁명이 벌어진 이란에 6270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도 안겼다. 많은 이란인은 미국이 이라크를 배후 조종하고 지원해 이란을 공격하도록 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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