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집들은 힘이 없으니까 불도저가 밀어버리면 금새 붉은 바퀴 자국만 남았는데, 내게는 그 모습이 꼭 우리 영혼이 흘린 피 같았다 ... 당시 우리 고모는 막내 사촌을 업고 불도저에 뛰어 었고, 또 어떤 사람은 운전수에게 똥물을 뿌렸다. 지금 같았으면 화염병이라도 던졌겠지만 그 당시는 할 수 있는 저항의 전부였다. 그 저항은 어떤 이념에 기반을 두지 않은, 뿌리 뽑힌 삶을 향한 근본적인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다."경남 창원 출신 고영조 시인은 고향 '귀현리'의 마지막 쓰라린 기억을 이같이 더듬었다. 고 시인은 시에서"그해 봄날 뱃길 끊기고 / 무성하던 회나무 / 공장 부지로 뽑혀질 때 / 새순 피우던 포도밭과 함께 / 꿈마저 뽑혀지고 / 마침내 우리도 뽑혀졌다"고 했다.
창원공단이 우리나라 산업사·도시사 차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고, 그래서 누구는 '신화'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원주민들이 받았던 고통이나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다. "말뚝이 박힌 곳마다 어김없이 중장비가 들이닥쳤다. 대대로 부쳐먹던 논마지기든 선조가 잠든 선영이든 가리지 않았다. 농민들이 잃은 땅은 삶 그 자체였다. 이들이 고향을 등지고 이주단지로 떠나면서 겪은 고통은 눈부신 도시 발전의 그림자로 남았다. '딱 우리집 복판에 말뚝을 받더니 ... 왜 그러는지 자세히 가르쳐 주지도 않아요. 너희는 알 필요 없다고 ... 제일 좋은 논도 평당 1300원, 밭은 200~300원, 그냥 강제수용이에요'."
창원기계공고 졸업생들 이야기도 있다. 책에는"학교 동기 900여 명 중 함께 입사한 사람만 120명이다. 이는 당시 삼성중공업이 창원기계공고와 결연하고 유능한 학생을 미리 선점했기 때문이었다. 실습 장비를 대주거나 졸업 전에 일본어 교육을 하는 등 신경을 쏟다가, 우수한 학생들을 우선 추천 받았다"는 대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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