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가 기다리는데…수만 병력 12km 앞 고개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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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는 다시 혹독한 겨울을 보냈습니다. 또 한성을 비웁니다. 세 번째입니다. 병자호란입니다.

1637년 1월 병자호란. 남한산성에서 웅거하고 있는 인조를 구하기 위한 수천, 수만의 병사가 경상도 등지에서 올라오다가 경기도 광주의 이 대쌍고개 근처에서 청나라 군대에 의해 궤멸된다. 김홍준 기자

경기도 광주 대쌍령리에 있는 교통표지판은 남한산성이 21km 거리임을 보여주고 있다. 직선거리로는 12km다. 1637년 1월 남한산성의 인조를 구하기 위해 북상 중이던 수천, 수만의 조선군은 이 곳에서 청나라 군에 의해 와해된다. 김홍준 기자인조는 남한산성에서 '근왕' 명령을 내린다. 근왕은 왕을 위해 충성을 다한다는 뜻이다. ‘적병이 남한산성을 포위한 지 벌써 엿새…빨리 달려와 군부의 위급함을 구하게 하라.’ 비변사를 통해 경상감사 심연이 납서를 받는다. ‘나는 지혜가 부족하고 어질지 못하여 너희 사민을 저버린 바가 많았도다. 너희는 각자의 지혜와 힘을 모아서…북으로 진군할지어다…이에 교시하노니 잘 생각하고 알아서 행하여 주기를 바라노라.’심연은 끌어모은 병력을 서둘러 왕이 있는 남한산성으로 보낸다. 허완과 민영, 선세강 등이 앞서 출발했다. 이의배 등도 합류한다. 심연은 뒤따라가기로 했다.

한 교수는 “당시 청군은 남한산성으로 통하는 길목을 모두 막고 있었다”며 “영남뿐만 아니라 각지의 근왕군이 남한산성에 발도 붙이지 못 하게 했다”고 했다. 청군은 이미 이 영남 근왕군을 포위하고 있었다.공조참의 나만갑은 남한산성에서 병자호란을 기록한다. 그의 『병자록』에 따르면 허완은 정예 조총수를 진영 가운데에 집중 배치했다. 진영 바깥쪽이 약해지게 됐다. 화약을 2냥씩 나눠줬다. 1월 3일 아침. 청군 33명이 국수봉 능선에서 벼락처럼 내려왔다. 선세강이 춥더라도 능선에 진영을 구축하자고 했으나 허완이 묵살하지 않았던가. 때늦은 후회다. 약한 고리인 허완의 최전방 포수들이 난사했다. 화약이 떨어졌다. 화약을 더 달라고 소리쳤다. 적이 이 말을 용케 알아듣고 돌진. 선세강이 홀로 화살 30여 발을 쏘았으나 모두 청군의 목방패에 맞고 떨어졌다. 선세강은 적 화살에 맞아 죽었다.적병이 목책 안으로 쇄도했다. 중상급 포수들은 총 한번 쏘지 못하고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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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래는거야

인조는 지금의 누구와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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