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 '무장공비' 둔갑시킨 군인, 서류 불 태우며 '입 다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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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간 공작원을 사형수 등 범죄인으로 오인하게 했다...생존자 4명에 대해서 비밀리에 사형이 집행됐고 시신은 암매장됐다”

1971년 8월 23일. ‘실미도 부대’ 공작원 24명의 탈출이 시작됐다. 1968년 5월 실미도 부대에 입교해 지옥훈련에 시달린 지 3년 4개월 만이다. 공작원들은 이날 아침 점호 직후 기간병 18명을 살해하고 소총과 수류탄 등으로 무장한 채 서울로 향했다. “6개월만 훈련하고 김일성 모가지를 따면 장교로 임관시켜준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왜 4년이 되어가도록 훈련만 시키는 겁니까.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들이 탈출을 감행한 이유다. 서울로 향한 건 국민과 ‘높으신 분’들께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그날의 총성을 찾아…실미도 50년⑬]총격전 후 7개월만에 사형 집행

공작원들의 탈출은 실패했다. 그들은 실미도를 벗어나 인천의 여객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갔다. 하지만 서울 동작구 대방동 유한양행 근처에서 군과 경찰에 막혔고, 공작원들은 총격전 끝에 버스 안에서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했다. 이들의 탈출 과정에서 공작원 20명을 비롯해 기간병 18명, 경찰 2명, 민간인 6명 등 46명이 숨졌다. 한낮의 서울 도심 총격전은 국민이나 정부에게 충격이었다. 정부는 사건 직후 실미도 부대의 존재를 부정한다. 국방부는 그날 오후 3시쯤 대간첩대책본부를 통해 “무장공비들이 서울에 침투했다”고 발표했다. 3시간쯤 후 정래혁 국방부 장관은 “공군 관리하에 있던 특수범들이 탈출하여 난동하였다”고 정정했다. 군사편찬연구소의『국방편년사』는 1971년 8월 23일의 사건을 최종적으로 특수병의 난동으로 기록했다. 정부는 또 물밑에서 실미도 공작원들을 ‘사형수 집단’ ‘무기수 집단’으로 내몰았다. 모두 거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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