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신문 1935년 6월1일자에 실린 내자동 미쿠니 아파트의 호화 낙성식 풍경. 시미즈건설주식회사가 보유중인 내자동 미쿠니 아파트 모습. ‘조선과 건축’에 소개된 남산동 미쿠니아파트 외관. 오늘날까지 공동주택으로 사용중인 남산동 미쿠니아파트. 사진·도서출판 집 제공1930년대 경성의 신문에는 아파트에 대한 기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선례를 따라 경성에도 임대용의 복층 이상 아파트가 하나둘씩 지어지던 시기였다. 1931년 1월31일자 매일신보는 독일 라이프치히에 들어선 동심원 구조의 아파트 단지를 ‘기관’, 즉 기이한 광경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 노동자들이 집단 거주한 아파트도 잇달아 소개했다. 스웨덴 집권당이던 사회민주당이 주택정책, 도시계획의 질서를 강조하며 추진한 아파트도 인상적이다. 중앙난방 방식이 주로 채택됐고, 다양한 공용시설이 계획됐다.
오늘날 서울시민의 40% 이상, 전국적으로 50% 이상이 아파트에 산다. 는 서울에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지어지기 시작한 1930년대를 살펴본다. 당시 아파트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누가 짓고 살았는지, 집세는 어느 정도였는지 꼼꼼히 찾는다. 이를 위해 당시 소설, 신문, 잡지, 전화번호부까지 뒤졌다. 풍부한 도판과 통계 자료를 제시한 학술서에 가깝지만, 일반 독자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많은 신문물이 그러하듯, 처음 소개된 ‘아파트’ 개념은 모호했다. 오늘날처럼 개인이 사서 장기간 거주하는 개념이 아니라, 일본계 민간회사가 지어 필요한 사람에게 일정 비용을 받고 대여하는 형식이었다. “고급 여관인 호텔과는 조금 달라 보이지만 그렇다고 학생이나 회사원처럼 장기간 거처를 빌려 식사와 잠자리를 해결하는 통상의 하숙도 아닌 그 무엇이 바로 아파트였던 셈이다.
새로운 개념의 주거형태인 아파트는 곧 ‘풍기문란’의 장소로 여겨지기도 했다. 오늘날 아파트가 입주자들을 위한 폐쇄적인 공간으로 여겨지는 것과 달리, 당시 아파트는 1층에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사교공간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일종의 주상복합건물이었던 것이다. 이 공간에서 마작을 하거나 당구를 치는 사람들이 늘었고, 심지어 댄스홀이 열리기도 했다. 모던걸과 모던보이가 아파트로 몰려들자, 세태를 비판하는 시선도 그만큼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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