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출산을 했다. 임신 기간 내내 문제가 없었고 워낙 건강 체질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출산 직후 출혈이 너무 심해 위험한 상황이 생겼다. 다행히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빠르게 할 수 있었고, 산부인과 교수가 당직으로 있어 바로 응급수술을 했다. 어느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죽은 목숨이라고 했다.
생명과 관련한 일이 운에 따라 달라져도 괜찮은 것일까. 문득 몇 년 전 중학생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서 일어나는 차별에 대해 토론한 것이 생각났다. 성, 성적, 외모 등에 대한 차별이 주로 많았는데, 한 학생이"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일이 행운이어야 하는 것이 차별"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선생님 개인에 대한 좋고 싫음이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게 존중받으며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서울에 다녀온 학생들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 사이에는 실제로 성적 차이가 꽤 난다는 점이다. 본인이 의지가 있어도 서울에 갈 형편이 되지 않는 아이들이 느끼는 좌절감과 패배감은 누가 치유해 줄 것인가. 공교육은 모든 아이들이 삶의 기술을 배우고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는 공간이자 시간이 되고 있다.의료와 교육, 그 무엇보다도 공공의 영역으로 지켜야 할 두 부분이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롭다. 그리고 이 공공의 영역을 지키고 만들어가야 할 정치는 더욱 위태롭다. 벌써 반년 가까이 지속하고 있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갈등은 이 문제의 본질에 대한 논의로 전혀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라는 행위가 가진 공공성에 대해서 함께 더 깊게 고민한다면, '의대 증원'이라는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필요한 의료 정책을 도출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이것들이 가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공공 영역'이다.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의료, 자신의 세계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교육, 그 세계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치다. 아렌트의 철학에 따르자면 우리는 인간으로 살아갈 조건을 모두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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