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궁 마당에 쌓인 ‘학살당한 위그노’ 주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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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전쟁의 역사에서 가장 암울한 사건인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massacre de la Saint-Barthélemy)은 루브르궁 일대를 피로 물들였다.

1572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파리서만 위그노 3천명 학살 루브르궁은 프랑스혁명 직후인 1793년에 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박물관 마당의 유리 피라미드는 프랑스혁명 200주년인 1989년에 완공됐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1766년에 계몽사상가 디드로는 7년 전에 문을 연 런던의 영국박물관처럼 프랑스 왕들의 수집품을 대중에게 공개하자고 제안했다. 1793년 7월27일에 국민공회는 ‘제2의 혁명’ 1주년 기념일인 8월10일부터 루브르박물관을 열기로 의결했다. 1982년부터 미테랑 대통령이 “대루브르” 계획을 실행하여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페이는 프랑스 혁명 200주년인 1989년에 유리 피라미드를 완공했다. 그때부터 방문객은 지하 1층에서 북쪽의 리슐리외관, 중앙 동쪽의 쉴리관, 남쪽의 드농관의 한곳으로 입장해서 전체를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찰스 1세의 비는 1609년에 루브르궁에서 태어난 앙리에트 마리 공주였다. 프랑수아 1세는 루브르의 아성을 헐고 건축가 레스코와 조각가 구종에게 이탈리아식 건물을 짓게 했다. 한편 프랑수아 1세는 ‘루아르 강변의 성들’의 일부를 증축하고, 가장 웅장한 샹보르성을 지었다. 프랑수아 1세의 상징인 불도마뱀은 샹보르성 말고도 블루아성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블루아성에서 루이 12세의 고슴도치와 그의 둘째 비 안 드 브르타뉴의 흰 담비도 볼 수 있다. 서화의 낙관처럼 궁성 건축에 소유자의 낙관을 찍은 셈이다. 18세기 초반의 파리시를 그린 튀르고 지도에 나타난 루브르궁의 모습. 위키피디아 루브르박물관이 포착된 2006년 항공사진. 위키미디어 ______________노트르담 성당 앞에서 치른 왕가 결혼 앙리 2세는 아버지가 끝내지 못한 이탈리아식 건축물을 완성했다. 그는 르네상스·종교개혁의 시대에 살면서도 중세 기사도를 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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