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친일 영화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최초의 친일 영화로 평가되는 서광제 연출의 가 그것이다. 1938년 6월 29일 경성 약초극장에서 개봉된 이 영화의 '스포일러'가 7월 2일 자 기사 '7월 제1주 영화'에 등장했다. 기사 작성자는 영화감독 이규환이다.
기생으로 있는 영심이는 이천 원 때문에 마음에 업는 결혼을 강요당하고 잇다. 이 사정을 아른 원진이는 아무리 생각을 한댓자 이천 원을 변통할 길이 업다. 이러던 중 스파이로 다니는 사람에게 잘못 걸려 점용이게서 군용열차 출발의 시간을 몰래 알어내이여서 밀고해주면 이천 원을 당장 내준다는 것이다. 그런 뒤에 홍찬이 참여한 일이 일제의 영화통제 작업이다. 모든 영화사들을 조선총독부 하의 단일 기업으로 통합하는 작업이었다. 그 결과로 탄생한 회사가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였다. 홍찬은 이 회사 진행주임으로 활약했다. 반민특위가 그를 체포할 만한 사유는 충분했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해방 이전의 연고를 기준으로 귀속재산을 불하했다. 일본인 재산이나 기업과 연고가 있었던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줬다. 그러다 보니 친일파들이 취득하는 일이 많았다. 이는 그들이 해방 뒤에도 막강한 힘을 갖게 되는 원동력 중 하나가 됐다. 한국 현대사를 뒤틀리게 만든 원인이기도 했다. 적들이 갖고 있었던 재산이라 하여 적산으로 불렸던 약초극장을 인수한 것은 홍찬에게 경제적으로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힘이 됐다. 그는 적산 극장 인수인들을 모아 한성극장협회를 조직한 뒤 서울극장협회로 개편했다. 1946년 11월 28일 자 2면 우중단 기사는 그가 이 단체의 이사장이 된 사실을 보도했다.적산 인수로 재산과 영향력을 키운 그의 또 다른 방식은 해방정국 하의 좌우 대결에 가세하는 것이었다. 그는 친일파 편에 선 이승만의 재정 후원자 역할을 했다. 1946년 11월 28일 자 3면은 이승만의 미국 방문을 후원하는 민족외교사절후원회에서 홍찬이 간부급 역할을 했다고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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