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차림새가 셜록 홈스를 연상케 했던 친일 형사가 있다. 악명 높았던 김태석이 바로 그다. 국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된 뒤에 발행된 1949년 5월 21일자 2면 등에 실린 그의 사진은 한국인 얼굴의 영국 신사를 보여준다.셜록 홈스를 연상케 하는 사진을 남겼지만, 그의 수사 방식은 셜록 홈스와 거리가 멀었다. 셜록 홈스는 범행 현장에서 포착한 단서에 대한 추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데 비해, 김태석은 주로 정보원과 고문을 활용해 사건을 처리했다.그는 악질적인 고문으로 억지 자백을 받아내는 수준에 그치지 않았다. 고문을 해서 사람을 죽이는 일로도 유명했다. 1949년 2월 12일자 기사 '김태석의 죄상'은"현재 반민 혐의자로 체포되여 있는 그 당시 고등계 형사주임으로 고문치사에 유명하든 김태석","일제의 충실한 악독 고문 경관이든 김태석"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독립투사들의 행적을 정리한 에 따르면, 성격이 호탕했던 강우규는 자신의 의거로 인해 서울이 발칵 뒤집혀 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여관 사람들 앞에서"경찰이 죄 없는 사람들을 잡아가고 있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제1권은" 도내에서 소 466마리와 돼지 5417마리를 비롯해 모피 4만 9014매를 공출하는 등 각종 군용물자를 수집하는 데 앞장서 '공출의 귀감'으로 평가되었다"고 설명한다. 고문왕에 이어 공출왕 타이틀까지 얻었던 것이다. 일제가 그에게 중추원 참의 타이틀을 줘서 국회의원 비슷한 위상을 부여한 것은 일본에 대한 그의 충성도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노태우 정부 때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 최자남 선생은 강우규 의거 때 수류탄을 보관해줬다. 박정희 군사정권 때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 황상규 선생은 김원봉과 함께 의열단 활동을 했다. 독립운동가라는 이유로 최자남·황상규 등을 체포했던 김태석이 1949년에는 그들을 가짜로 몰아세웠던 것이다.검찰은 사형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무기징역과 재산몰수 50만원을 선고했다. 적지 않은 형량이 선고됐지만, 추상같은 형벌 집행이 이미 불가능해진 뒤였다.
사형집행을 안하는 대통령들을 전부다 직무유기로 처벌 해야 한다. 일벙기간 내에는 사협집행을 빈드시 하게 법으로 규제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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