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영웅이기 전에 인간이고 싶다 - 경향신문

[커버스토리]영웅이기 전에 인간이고 싶다 - 경향신문

[커버스토리]영웅이기 전에 인간이고 싶다

대구에 도착한 지 사흘쯤 됐을까. 맥박이 없는 환자가 들어왔다. 자원봉사자가 먼저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2020-05-23 오전 7:00:00

코로나19는 간호사들이 처한 현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대구에서의 사투는 전국에서 벌어지는 간호사들의 일상과 닮았다. 보장되지 않는 안전, 열악한 처우. 간호사의 업무를 묘사하자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수식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간호사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었다.

대구에 도착한 지 사흘쯤 됐을까. 맥박이 없는 환자가 들어왔다. 자원봉사자가 먼저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코로나19로 파견갔다 돌아온 연세세브란스병원 김수련 간호사. 강윤중 기자대구에 도착한 지 사흘쯤 됐을까. 맥박이 없는 환자가 들어왔다. 자원봉사자가 먼저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있었다. 숨 쉬기도 힘든 보호복을 입은 채 18분 동안 교대로 심폐소생술을 이어갔다. 김수련 간호사(신촌세브란스병원·사진)는 중환자실 5년차. 수많은 심폐소생술을 경험했지만 이날이 가장 힘들었다. 반팔을 입고 해도 2분이면 땀이 뻘뻘 난다. 온몸이 땀범벅이 됐다. 이날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던 간호사는 단 두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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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일하던 병원의 간호 관리자에게 “간호사를 더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가 3월 한 달 동안 일했던 대구동산병원은 전국에 호소했지만, 간호사를 파견할 여력이 있는 병원은 어디에도 없었다.코로나19 방역에 성공했다며 전 세계의 칭송이 쏟아졌다. “방역과 치료를 분리해서 본다면 어떤 평가가 나올까.” 간호사들은 코로나19로부터 시민을 지키는 영웅과 천사, 때로는 전사로 불렸다. “코로나19 전사는 누가 지켜주나.” 2차 대유행에 대한 경고가 나올 때마다 소모품 같은 대우를 받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코로나19는 한국 간호사들이 처한 현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대구에서의 사투는 전국에서 벌어지는 간호사들의 일상과 닮았다. 보장되지 않는 안전, 열악한 처우. 간호사의 업무를 묘사하자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수식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간호사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었다.현실의 간호사는 골절, 화상, 삠 등 육체노동자의 온갖 부상을 몸에 달고 산다. 그러다 현장에 능란해진 베테랑 간호사는 하나둘 병원을 떠나고, 매년 갓 학교를 벗어난 신규 간호사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간호사들은 말한다. 영웅의 삶이 아닌 인간다운 삶을 찾고 싶다고.

■“다시 전염병 온다면 비참하게 일했던 간호사들, 또 뛰어들 수 있을까”‘대구동산병원 코로나19 파견 근무 후기’로 반향 일으킨 김수련 간호사대구로 코로나19 파견 근무를 다녀온 김수련 간호사(신촌세브란스병원)를 지난 8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촬영을 위해 야외로 나와 잠시 마스크를 벗으면서도 ‘의료인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줘도 될지 모르겠다’며 걱정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영웅이나 천사로 불리고 있지만

힘들면 울고, 과로하면 소진되는‘사람’이라는 것…알려야 했다지난 8일 오전 11시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카페에 마주 앉은 김수련 간호사(신촌세브란스병원)는 “평소였으면 자고 있을 시간”이라고 했다. 오후 1시30분 시작하는 ‘이브닝’ 근무가 있는 날이라 인터뷰가 없었다면 늦잠을 잤을 거라는 얘기였다. 김 간호사는 지난 3월 한 달 동안 코로나19 파견 근무로 대구동산병원에서 일했다. 이날은 대구에서 돌아온 지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서울로 돌아와 자가격리 기간에 페이스북에 써서 올린 파견 근무 후기가 널리 알려졌다. 매일 쓴 일기를 참고해 대구에서 보고 들은 일을 공론화하기 위해 글을 올렸는데 예상치 못한 반향을 일으켜서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도 많았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19와 싸운 ‘영웅’ ‘천사’ 같은 수식어를 불편해했다.

한 인터뷰에서 김 간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영웅이나 천사로 2주나 한 달은 있을 수 있어요. 희생하고 과로할 수는 있지만, 과로하면 소진되는 게 사람이에요. 사람으로서의 간호사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거기서 사람이 일하고 있다고, 안전하지 않고 무섭고 힘들면 우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알리고 싶었어요.”김 간호사는 대학 시절엔 교사가 되려고 했다. 간호사로 진로를 바꾼 건 ‘내 손으로 무언가 바꿀 수 있는’ ‘내가 하는 일이 곧 옳은’ 그런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숨이 간당간당한 환자를 멱살 잡고 끌어올리는’ 중환자실에서 5년을 일했다. 그 자부심으로 대구까지 다녀왔다. 대구에 다녀온 건 가족 중 아직 남편밖에 모른다고 했다. 걱정도 했지만, 급박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더 앞섰다. 인터뷰에 응한 건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 전염병이 유행한다면, 비참한 처지에서 일했던 간호사들이 다시 뛰어들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제 경험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김 간호사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측은함과 트라우마가 남았습니다”숙소도 제대로 된 보상도 없어소모품이란 생각 안 들게 해야현장엔 경험 있는 간호사들 부족- 대구에 가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혹시 있었나요.“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2월부터 대구에서 감염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을 때 ‘이 정도 규모면 사람이 죽어나가겠구나’ 싶었어요. 간호사 자체가 당장 적은데, 누구를 투입할지 걱정이 됐습니다. 일단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보건복지부에 문의하니 병원에 소속된 간호사는 파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의료 공백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러다 대구에서 전국에 SOS를 보내면서 우리 병원에서도 의료진을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서울에서 가장 큰 병원들도 중환자실에서는 1~2명 정도 파견 보내는 게 최선이었습니다. 이미 열악한 인력으로 특근을 하며 운영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람을 보내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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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대구에 도착했을 때 상황은 어땠나요.“병원에 환자는 많았지만 중환자실에 배치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증세가 가벼운 환자만 있다고 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중환자들이 늘어났습니다. 중환자실은 막 차려진 상태여서 간호사가 부족했습니다. 사실 전체적으로 간호사가 부족했습니다. 필요 인원이 200명이면, 140명밖에 없던 상황이었어요.”- 대구 지역에서도 많은 간호사들이 코로나19 치료에 투입됐죠.“대구를 다시 생각해보면 측은함이 느껴집니다. 아직도 트라우마가 남은 것 같아요. 거기에서 일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아직도 남아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 큽니다. 동료들 생각이 많이 나요. 지금 일하고 있는 사람들, 강제로 차출된 뒤 파견 근무하다 자가격리도 없이 원래 일하던 부서도 아닌 다른 곳으로 파견 간 대구의 간호사분들도 계십니다. 병원에서 그분들에게 ‘강제로 차출하지 않겠다’ ‘자원해서 가면 월급의 2배를 주겠다’고 했지만 결국 지켜진 게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숙소도 마련되지 않고, 제대로 된 보상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나마 도와주러 온 입장이었기 때문에 부족한 것이 있으면 큰소리치면서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소속 병원에서 차출된 분들은 제대로 항의하지도 못했습니다. 검사나 방역을 요구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대구나 다른 지역에서 다시 코로나19가 집단 발병하면 또 가야 한다고 권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처지가 너무 비참했으니까요. 다시 고생해 달라고는 못할 것 같아요. 최소한 소모품으로 쓰였다는 생각은 들지 않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간호 현실 드러낸 ‘코로나19’지난 3월13일 촬영한 대구 지역 간호사들의 사진. 계명대병원에서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이들은 장시간 마스크와 보호구를 착용해 이마 등에 상처가 나는 걸 막기 위해 치료용 밴드를 붙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고질적인 간호사 인력 부족 문제간호대 정원 늘리는 ‘임시방편’만사직률 높아도 졸업생 증가로병원 입장에선 아쉬울 것 없어- 코로나19와 싸우는 현장에 계셨는데 어떻게 평가하시나요.“한국이 방역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치료에도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있던 대구 동산병원 중환자실은 사망률이 결코 낮지 않았습니다. 확신할 수 있는 건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면서 최선을 다했다는 거예요. 충분히 훈련되고 경력이 있는 간호사가 없고, 제대로 된 지원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죠. 오랫동안 이어진 간호사 인력부족 문제를 무시해온 결과라고 생각해요. 현장에서는 간호사의 머릿수가 가장 중요합니다. 환자를 직접 대면하는 게 간호사니까요. 우리나라의 간호사 수는 높은 사직률 탓에 원래부터 적었지만, 그동안 다들 무리하고 헌신하며 버텨왔던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코로나19가 터졌는데, 뭘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제대로 된 교육 없이 당장 환자를 봐야 하는 간호사는 극심한 부담감을 느낍니다. 함께 파견 간 병동 간호사는 체외막형산화장치(ECMO·체외에서 혈액과 산소를 공급해주는 기기)를 볼 줄 몰랐습니다. 사용 방법을 급하게 배워 중환자실에 배치됐습니다. 강한 친구였는데, 하루 만에 집에 가고 싶어했습니다.”

- 평소에도 간호사가 많이 부족했나요.“사실 신규 간호사나 (간호)면허 소지자가 부족한 건 아닌 것 같아요. 훈련받은 ‘일하는’ 간호사가 턱없이 모자랍니다. 신규 간호사는 계속 늘어나지만, 충분히 훈련을 받기도 전에 대부분 그만두는 게 문제죠. 어느 병원을 가도 신규 간호사는 많지만 3~5년차 이상 간호사 자리는 텅텅 비어있습니다. 제가 5년차인데 근무 때 책임 간호사를 제외하면 가장 경력이 많을 때도 있습니다. 간호사들이 그만두지 않도록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를 고쳐야 하는데, 간호대 정원을 늘리는 식의 임시방편만 나왔습니다. 채용 규모는 늘지 않고, 처우는 그대로인데 간호대 졸업생은 늘었으니 채용은 쉬워집니다. 간호사가 그만둬도 새로 뽑기 쉬우니 병원에는 오히려 이득이죠.”

- 주변에도 그만둔 간호사들이 많나요.“(간호대)학교를 졸업한 동기가 158명이었는데, 첫해에 절반이 그만뒀고, 5년차인 지금은 70%는 병원을 떠난 것 같습니다. 나머지 30%는 ‘언제 그만두지?’ 하고 시기만 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은 간호사들이 계속 나올 수 있을까요. 경력은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잖아요. 5년 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를 경험한 간호사들이 지금 거의 남아있지 않은 듯합니다. 그때 감염 현장에서 어떻게 환자를 대했는지 경험한 간호사들은 사라졌습니다. 제가 당시(2015년) 입사했는데, 그때 국립중앙의료원에 갔던 간호사 동기들은 지금 모두 그만둔 상태입니다. 코로나19를 경험한 간호사들은 앞으로 얼마나 남아있을까요.”

■간호사 인력, 공공의 문제훈련받지 않은 간호사라도머릿수만 채우면 되는 병원경력 가진 간호사 유지는 불필요결국 비용 문제…법·제도 마련을- 처음 간호사가 됐을 때는 어땠나요.“내가 너무 멍청하고 일을 못한다는 생각으로 그냥 버텼던 것 같아요. 신촌 거리를 매일 울면서 퇴근했으니까요. 내 실수로 환자가 잘못될 수 있다는 죄책감이 컸습니다. ‘이렇게 사느니 죽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018년에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선욱 간호사와 동갑인데,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저도 다 겪었던 일이니까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제 탓만은 아니었습니다. 트레이닝이 충분하지 않았어요. 선배 간호사들도 신규 간호사까지 책임지기 버거웠고요.”

- 마음을 다스리는 게 쉽지 않겠습니다.“제가 돌보던 환자가 죽으면 마음에 상처가 크게 남습니다. 오랫동안 봤거나 마음을 썼던 환자들의 장례식장에 자주 갔어요. 근데 계속 그렇게 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일과 개인이 분리되지 않으면 힘들어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항상 아픈 환자와 울고 있는 보호자들 사이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오래 하기 힘든 일입니다.”- 이런 상황이 오랫동안 바뀌지 않았습니다.“간호사들이 너무 지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자기 일만 끝내기도 힘드니까, 따로 시간을 할애해서 힘을 쏟고 싶지 않은 거죠. 또 간호사라는 일에 대한 애정이 없습니다. 병원이 나를 착취하는 곳이라 생각하게 되니, 개선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간호사라는 직업을 벗어버리고 싶어하죠. 자기 목소리를 내는 간호사에게 위협적인 환경이라는 점도 큰 원인입니다. 그래서 많은 간호사들은 불합리한 상황을 참으면서 언제 그만둘지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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