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헌의 전원일기](5)“몸은 어쩌요?” “들엔 나가 보셨소?”…“괜찮아, 그나마 다행이야”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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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헌의 전원일기](5)“몸은 어쩌요?” “들엔 나가 보셨소?”…“괜찮아, 그나마 다행이야”

그래. 이만하면 괜찮은 거 아닌가. 성공은 개나 주지 뭐

12.9.2019

그래. 이만하면 괜찮은 거 아닌가. 성공은 개나 주지 뭐

병원밥 먹다 보름 만에 귀가볼라벤 같은 야무진 태풍이 온단다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45도 기울고 편...

괜찮다 비보다 바람이 강했던 태풍 ‘링링’은 수확을 앞둔 들녘에 큰 상처를 남겨 놓았다. 친환경 인증업체 직원이 태풍으로 벼가 드러누운 필자의 논에서 성분 검사를 위한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원유헌 병원밥 먹다 보름 만에 귀가 볼라벤 같은 야무진 태풍이 온단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45도 기울고 편히 누운 벼들… 세워놓으려 몸을 숙인 순간 ‘윽’ 수술부위가 아직 심하게 아팠다 보름 만의 귀가였다. 병원밥 먹다가 돌아온 구례는 옴팡지게 익어있었다. 나락은 어느새 누런 빛을 먹었고 죽을 둥 살 둥 하던 들깨는 꽤 넓은 이파리와 보라색 꽃을 달고 있었다. 잡초는 더했다. 해병대 관자놀이처럼 깎아 놓고 떠났던 농장 진입로는 더벅머리가 돼 있었다. 그간 몸이 좋진 않았다. 좋은 몸이 아니기도 하지만 컨디션이 안 좋았다는 얘기다. 그러다 받은 건강검진으로 앙가슴쯤에 품고 있던 혹이 발견됐고, 의사 입장에서만 간단했던 수술로 4시간 만에 덩어리를 도려냈다. 입원실 커튼을 방음벽으로 알고 떠드는 사람과 여자친구의 병문안을 위해 하루 더 입원하게 해달라고 조르던 불륜남 틈에서 회복은 참으로 더뎠다. 멀쩡하게 들어가서 환자가 돼 나온 기분이었다. 그나마 모내기나 수확 시기와 겹치지 않은 것만 다행으로 여겼다. 꼭 다행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귀농 후 첫 농사 때 맞이했던 태풍 볼라벤만큼 야무진 놈이 올라온다고 했다. 누군가 5-7-5-7년 주기로 태풍이 왔다고 주장하더니 재수 없는 말은 잘 들어맞는 편이다. “과학적으로 볼 때 태풍은 위대한 자연의 섭리”라는 라디오 속 전문가의 말은 더 재수 없었다. 별수는 없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손보고 틀어막고 해야 할 판에 몸놀림까지 어려운 사람한테 할 소리는 아니었다. 나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겠지만 “오! 대단한 자연!”을 외친 사람은 적을 듯하다. 왜 치통과 태풍은 밤에 오는지, 여느 때처럼 태풍전야는 무서웠다. 쌍가락지 같은 이름의 태풍은 곱게 차려입은 귀신처럼 더 공포스러웠다. 검은 하늘 들판에 나가니 어렴풋이 논의 벼들이 휘둘리고 있었다. 태풍은 뿅망치로 때리기 전에 붕붕 헛방 날리는 놈처럼 쇳소리를 냈다. 상상과 목격 중에 뭐가 더 무서울지 몰라서 나가 봤지만, 돈 주고 보러 가는 공포영화도 중요한 순간엔 눈을 감는 판에 굳이 상처 입는 순간을 지켜보는 건 잔인했다. 집에 돌아와 TV를 켰다. 기자들이 얼굴에 비를 맞아가며 태풍 관련 보도를 이어갔다. 내내 비를 맞을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는데 자학 코스프레를 이어갔다.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소식도 있었다. 찬반 의견이 있는 게 당연하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모습도 익숙했다. 국회의원들은 예비군이랑 비슷한 면이 있다. 예전에 예비군 동원훈련을 가서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짝다리에 팔자걸음을 걸었고, 삐딱하게 쓴 모자에 말투도 걸었다. 뭣들 하는 사람인가 물어보면 변호사도 있었고 선생님도 있었다. 이상하게 나도 예비군 마크를 단 군복만 입으면 동네 양아치가 무섭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이 그렇다. 하나하나 뜯어 놓고 보면 참 괜찮은 사람들도 많고 자기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업적을 쌓은 전문가도 많은데 배지 달고 여의도에 입성하면 다 똑같이 망가진다. 딱 하나 다른 점이라면 국회의원 중엔 실제로 양아치도 있다는 것이다. 새벽 어스름이 오도록 앉아 있었지만 뿅망치 소리는 계속됐다. 바깥이 궁금해도 괜히 부러진 나뭇가지에 수술 부위를 얻어맞고 쓰러지느니 자중하는 쪽을 택했다. 쓰러지고 부러진들 어쩔 것인가. 그러다 잠이 들었나 보다. 갑작스러운 전화벨에 놀라 전기충격 받은 것처럼 사지를 부르르 떨다가 휴대폰 화면을 보니 옆 마을 동생 H였다. “몸은 좀 어쩌요?” “응 그냥저냥.” “들엔 나가 보셨소?” “아니 겁나서 못 나가고 있네.” “그라믄 그냥 집에 계쇼. 나가 형님 논 지나가고 있는디 한 개는 괜찮고 한 개는 쓰라졌습디다.” “그려 나가 볼게….”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들어맞은 예감만 기억하고 틀린 건 까먹어서 그렇다고들 하지만 내 기억엔 확실히 나쁜 예감이 잘 맞는다. 대충 걸쳐 입고 나섰다. 논 두 곳 중에 한 군데는 벼들이 45도 기울었고 한 군데는 다들 편히 누워 있었다. 이 몸으로 세울 수도 없고 사람을 구해서 해도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다. ‘나락 세우는 일꾼은 못 구한다’던 누군가의 얘기도 떠올랐다. 농장으로 향했다. 감나무 가지는 멀쩡한데 열매와 이파리는 많이 상했다. 들깨는 ‘이참에 확 자빠져버릴까’ 고민하는 것처럼 거의 다 쓰러져 있었다. 세워주기라도 하려고 몸을 구부렸더니 가슴이 확 결려왔다. 수술 부위에 끼워져 있던 관 부위가 아직도 심하게 아팠다. 영화에서 화살 맞은 채 칼싸움 계속하고 끝내 이겼다고 팔 치켜들고 하는 거 순 거짓말이다. 칼 꽂힌 채 멀쩡히 돌아다니다가 칼 뺄 때 괴로워하던 도깨비도 가짜다. 꽂혔을 때 아프지 뺄 땐 안 아프다. 곱게 집으로 돌아왔다. 어떤지 묻는 아내에게 괜찮다고,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지금부터는 자기 최면이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왔다. 서울의 가족들, 친한 친구들, 다른 때는 몰라도 태풍 올 때마다 연락하는 지인들, 모두 고마웠다. 그리고 대답은 같았다. “괜찮아. 그나마 다행이야.” 전남 구례군 지리산국립공원 이정표가 태풍 ‘링링’의 강한 바람에 쓰러져 있다. ⓒ원유헌 태풍 한 방에 먹고살 걱정하는 나 괜찮냐고 묻는 아내와 이웃들 연달아 안부를 묻는 지인들 전화 그래 이만하면 괜찮은 거 아닌가 성공은 개나 주지 뭐… 전화가 뜸해지고 생각이 이어졌다. 이러다 수확할 거 하나도 없으면 어쩌나. 일 년 농사 중 가장 큰 수확이 벼와 감인데 당장 내년에 먹고살기 힘들어지는 거 아닌가. 2012년 볼라벤 때는 서울에서 싸 들고 내려온 거라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해 벌어 그해 살아야 하는데 쪽박 차는 거 아닌가. 그러다가 다시 누군가의 문자를 받고 답했다. “괜찮아 내년엔 손 좀 벌리고 살지 뭐.” 그래. 굶어 죽기야 하겠나. 거지 생활 한 번 하는 것도 괜찮지 뭐 생각이 들었다. 옛말에 거지 생활 사흘이면 다른 일 못한다고 했다. 특별히 하는 일 없어도 먹고살 만하다는 뜻이다. 거지와 변호사의 공통점을 알려준 사람도 있었다. 되기 힘들어서 그렇지 된 다음에는 그렇게 편하다고. 그동안 나 보고 귀농의 성공 케이스라고 치켜세우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내심 우쭐하기도 했다. 귀농해서 돈 번 사람은 애초에 찾기 힘들고 잘 버티고 잘 비벼져 살면 그게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어쩌다, 그것도 오랜만에 찾아온 태풍 한 방에 거지로서의 전망을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걸 보면 겨우겨우 버텨왔다는 얘기다. 모름지기 생활의 맷집이 중요한 법인데 나는 아직 제대로 맞아보지 않은 화초 같은 농부였다. 성공은 무슨…. “밥이나 묵었소? 뭐할 거 있간디? 밥이나 묵읍시다.” 아침에 전화했던 H가 다시 전화했다. 자기네 논도 쓰러졌다는 동생의 씩씩한 목소리가 슬펐다. 기운도 차릴 겸 기꺼이 나섰다. H는 얼굴과 가슴을 아래위로 쳐다보며 말했다. “어디가 어떻게 된 거요? 팍삭 늙었을 줄 알았더만 얼굴은 생생허네이.” 나 참, 몸무게가 2㎏이나 빠지고 기침할 때마다 아파 죽겠구먼 서운한 소리를 했다. 하긴 링거를 많이 먹어서 그런가 생각보다 살은 덜 빠졌다. 아플수록 초췌해 보이면 안된다고 염색도 시키고 머리랑 수염이랑 잘 깎으라고 잔소리해준 아내 덕에 오히려 말끔해 보였을 수 있다. “형님 논은 그나마 괜찮더구마. 싹 깔아지지는 않았습디다.” “다 누웠구먼 깔아지는 건 또 뭔데?” 벼가 눕는 경험을 처음 한 나는 H의 말귀를 알아듣질 못했다. 눕는 것에도 정도가 있다고 했다. 기울어진 건 아무 문제없고, 누웠더라도 벼 알갱이가 땅에 닿거나 물에 적셔지기 직전까지가 있고, 완전히 카펫처럼 깔리는 경우가 있단다. 내 논은 중간 단계에 해당되고 더 쓰러지지만 않으면 그나마 다행인 경우라고 했다. ‘그나마 다행.’ 주문이 통했나 보다. 밥 먹고 다시 논으로 달려가 확인해 보니 기가 막히게 낟알은 땅에서 떠 있었다. 더 큰비만 쏟아지지 않으면 괜찮겠다 싶었고 H의 말대로 논의 물을 빼기 시작했다. 가라앉은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태풍엔 분명 손톱이 있다. 세게 할퀴는 피해를 입는 와중에 재수 좋으면 손가락 사이로 무사하게 빠져 지나가기도 한다. 주변 비닐하우스를 봐도 그렇다. 어떤 곳은 몹쓸 곳으로 변하고 바로 그 옆은 멀쩡하다. 나는 손톱 가장자리에 스친 정도로 생각했다. 수확은 줄어들겠지만 거지꼴은 면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통증은 어제와 다르게 줄었지만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고 논이랑 밭을 오가며 상태를 살폈다. 라디오에서 다시 큰비가 내릴 거라고 했다. 가끔 켤 때마다 안 좋은 소리만 한다. 가뜩이나 논에 물이 차면 안되는 상황에서 큰비라니 배신감이 들었다. 그동안 하늘을 동업자 삼아 농사를 지었는데 태풍 끝에 또 큰비는 심했다. 때린 데 또 때리는 건 동업자 정신에 어긋난다. 그리고 뉴스는 또 안 좋은 얘기를 했다. 국회의원 아들이 술 먹고 고급 차로 사고를 냈단다. 근데 스무 살을 갓 넘은 그 아들이 그랬단다. 대놓고 말했단다. “스무 살에 나는 참 많은 걸 이뤘다. 3억원이 좀 안되는 차를 샀다. 이 차는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자괴감이 들었다. 50을 훌쩍 넘어 300만원 좀 안되는 트럭을 타고 아내 생일 선물도 미룬 채 사는 나는 뭘 이룬 건가. 저마다 자신이 사는 세상이 있기 마련이라지만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안 듣고 살 수는 없을까. 액수와 나이에 올라온 짜증은 다시 나를 향했다. ‘넌 언제쯤 참 많은 걸 이뤘다고 자부할 수 있겠니?’ 할 때쯤 전화가 왔다. 간전댁할머니의 전화였다. “내려왔는가요. 좀 어떤가요. 선재 즈그 어매랑 집에 와서 밥 좀 잡사요.” 괜찮다고, 방금 먹었다고 말씀드리고 끊자마자 동네 김샌의 전화가 도착했다. “자네 논 나락이 쓰러졌는가? 동네에서 자네 논 얘기를 해서.” 괜찮다고, 고개를 처박진 않았다고 말씀드렸다. 잠시 후 또 전화가 울렸다. “어쩐가. 내려왔는가? 나락 쓰러졌담서.” 괜찮다고, 세우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얘기했다. 나는 실제로 괜찮았다. 안부를 물어주는 가족이 있고, 본인도 피해를 입었으면서 남 걱정해주는 이웃이 있다. “보고 싶어요” 말씀해주시는 팔순의 오봉댁이 있고, “아프느라 애썼다”며 손에 봉투를 쥐여주는 형님이 있다. 퇴원한 날 집으로 찾아와 “형님은 안되지라?”하며 자기들끼리 소주 마시다 가는 동생들도 있고, “괜찮을 줄 알았다”며 본인의 예지력을 확인하는 누님도 있다. 무엇보다 서울대생들 중에 우울증 환자가 많다는 보도에 “그러게 왜 서울대를 갔대?”라며 걱정하는 아들과, 병 수발하다가 몸살이 나서 멍청해졌다고 시점을 착각하는 아내가 있다. 그래. 이만하면 괜찮은 거 아닌가. 성공은 개나 주지 뭐. ▶필자 원유헌 1967년생. 44년간 서울에서 살다가 2011년 연고가 전혀 없는 전남 구례로 내려가 농부입네 살고 있다. 농사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어 각종 아르바이트로 현찰을 보충하며 연명한다. 2018년<힘들어도 괴롭진 않아>(르네상스)라는 책을 만들기도 했으나 8년째 나아진 건 없다. 웬만하면 그러려니 하며 산다.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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