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앤 본〉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예언자〉로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감독 자크 오디아르의 연출이 〈라비앙 로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마리옹 코티아르의 연기에 불을 붙여 쏘아올린 폭죽 같은 작품이다.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여자가 밑바닥 인생을 사는 남자 복서를 만나는데, ‘장애를 극복한 사랑’이나 ‘밑바닥 인생의 순정’ 따위를 그리는 데는 관심이 없는 영화였다. 그냥 몸과 몸이 부딪히고 마음과 마음이 부딪히고 인간과 인간이 부딪혀 만들어내는, 어떤 불꽃의 아름다움이 담긴 이야기였다. “내가 당신의 등대가 되겠어요, 하며 새끼손가락 걸고 굳게 맹세하는 연인의 로맨스를 들려주는 게 아니라, 나 가라앉지 않을 테니까 너도 가라앉지 마, 하며 다섯 손가락 말아 쥐고 자신의 운명을 향해 각자의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들의 섹스를 보여주는” 영화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이번에는 ‘몸과 몸이 부딪히고 마음과 마음이 부딪히고 인간과 인간이 부딪혀 생겨나는’, 어떤 불꽃의 여전한 아름다움에 더해 약간의 쓸쓸함도 함께 담긴 영화다. 에밀리, 카미유, 노라, 앰버 스위트. 파리 13구를 표류하는 네 척의 조각배가 서로의 뱃전을 들이받고 뒤엉키다 상대의 구명조끼를 움켜쥐고 버텨내는 이야기다. 〈동주〉와 〈자산어보〉를 흑백으로 찍은 이준익 감독이 말했다. “컬러가 과거의 인물을 현재로 불러오는 느낌이라면, 흑백은 현재의 우리가 그들의 시대로 가는 느낌”이라고. 〈파리, 13구〉 거의 모든 장면을 흑백으로 찍은 이유.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현시대를 보여주는 시대극’일 수 있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지만 나와 다른 시간을 살아내는 그들 곁으로 다가가 보았다. 자신의 진짜 색깔을 숨기고 사는 흑백의 하루가 저문 뒤, 비로소 저마다의 컬러를 내보이는 비밀스러운 순간마다 나도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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