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연의 메타뷰(VIEW) ①] 요조 “능력자 돼야 한다는 강박에 저항할래요”

차가운 도시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서울 홍대 앞 길모퉁이의 오두막 같은 그곳에선 따...

2022-01-22 오후 12:00:00

요조는 2015년 서울 종로구에 ‘책방무사’를 처음 열었다. 2016년에는 책방도, 집도 제주 성산읍으로 옮겼다. ‘책방무사’ 2호점을 서울 홍대 부근에 낸 건 두 달 전인 지난해 11월이다.

차가운 도시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서울 홍대 앞 길모퉁이의 오두막 같은 그곳에선 따...

지난 1월 18일 이른 저녁, ‘책방무사’ 2호점에서 요조를 만났다. 싱어송라이터이자 작가이기도 한 그는 “책방을 매개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생각”이라며 “새로운 도전이자 모험”이라고 말했다.“메갈인가 봐” 쑥덕대며 나가는 손님도- 책방에 다각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거군요.이종수씨(38)는 요조와 8년째 함께 살고 있는 애인이다. 요조는 그동안 총 6권의 책을 출간했는데, 그중 산문집 (2017), (2018), (2021) 등에서 종종 종수씨를 언급했다.

“처음 몇해는 고전했어요. 수익 면에서는 지속적인 마이너스 상태였죠(웃음). 다른 데서 번 돈으로 서점의 적자를 계속 메꿔야 했어요. 그러다 입소문이 나면서 찾는 분들이 늘었어요. 지금 1호점은 안정적인 상태예요. 또 2호점은 월세를 소속사에서 내주고 있어요. 대신 2호점의 매출을 올려야 할 책임이 제게 있죠.”“저를 힘들게 하는 것도 사람이지만,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사람이니까요. 책방이라는 공간에서는 온라인으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요. 서로의 눈을 보고 마음을 나누고 영감을 주고받는 일들…. 그런 게 굉장히 좋더라고요. 책방무사의 일이라면 두 팔 걷고 나서주는 단골들도 꽤 있어요. 손님으로 왔다가 진짜 친구가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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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이어 서울에도 ‘책방무사’ 오픈 지난 1월 18일 요조가 서울 홍대 앞 ‘책방무사’ 2호점에서 문밖을 내다보고 있다. 요조는 이 공간을 라이브 공연과 독서회, 전시, 북토크도 하는 신개념 서점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 김창길 기자 차가운 도시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서울 홍대 앞 길모퉁이의 오두막 같은 그곳에선 따스한 기운의 노란 불빛이 은은하게 내비치고 있었다. 모퉁이를 돌아 민트색 격자무늬 유리문을 열고 마주한 7~8평 정도의 아담한 공간은 서점이라기보다 예쁜 편집숍처럼 보였다. 음반과 LP가 진열된 벽면 아래 턴테이블에선 독일 밴드 콰드로 누에보의 보사노바 재즈곡 ‘MARE(바다)’가 흘러나왔다. 크고 작은 탁상시계들과 구형 TV 등 엔틱한 소품들도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했다. 여느 서점과 달리, 책의 종류와 수량은 많지 않았다. 오로지 책방 주인인 요조(41)가 큐레이션한 서적만 판매하기 때문이다. 요조는 2015년 서울 종로구에 ‘책방무사’를 처음 열었다. 2016년에는 책방도, 집도 제주 성산읍으로 옮겼다. ‘책방무사’ 2호점을 서울 홍대 부근에 낸 건 두 달 전인 지난해 11월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테다. 전자책 시장의 성장과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문화의 확산으로 오프라인 서점들이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18일 이른 저녁, ‘책방무사’ 2호점에서 요조를 만났다. 싱어송라이터이자 작가이기도 한 그는 “책방을 매개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생각”이라며 “새로운 도전이자 모험”이라고 말했다. 서울 홍대 앞에 지난해 11월 문을 연 ‘책방무사’ 2호점. 요조는 자신이 큐레이팅한 책과 음반을 파는 이곳에서 공연과 전시는 물론, 뮤지션들의 북토크도 열 생각이라고 말했다. 제주·서울 오가며 지내…제주 거처는 캠핑카 책방 열고 수년간 고전했지만 지금은 안정적 “메갈인가 봐” 쑥덕대며 나가는 손님도 책방 매개로 새로운 다양한 일 도모할 생각 - 서울에 2호점을 낼 생각은 어쩌다가 했나요. “소속사(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사장님(김형수 대표)이 제주도 책방무사를 무척 좋아하세요. 자주 쉬러 오셨는데,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셨던 것 같아요. 책방을 매개로 새로운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셨어요. 그래서 야금야금 시도해봤어요. 작은 콘서트도 열고 전시도 하고…. (반응이) 나쁘지 않았어요. 하지만 물리적 거리가 있어 서울에 2호점을 낸 거예요.” - 책방에 다각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거군요. “이 공간 자체가 각이 잡혀 있지 않잖아요(웃음). 편안하게 책과 음반을 팔고 독서회도 열고 공연도 하는 것인데 앞으로는 더 활발하게 시도해볼 참이에요. 뮤지션들의 북토크도 생각하고 있어요.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작업에 영향을 끼친 작가나 책이 있는지…. 그 외에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아요. 저로서는 새로운 도전이고 모험이에요.” - 집도 아예 서울로 옮긴 건가요.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지내요. 지금은 아무래도 서울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대학로의 한 빌라에 전세를 얻어 지내고 있어요. 함께 살던 고양이 ‘또’와 ‘라이’도 데려왔고요. 제주도에서 살던 집은 임대계약이 만료됐는데 마땅한 집을 구하지 못해 캠핑카를 샀어요. 이종수는 일주일에 한 번 서울에 올라올 때 외에는 거기서 생활하고 있어요. 아주 만족해해요(웃음).” 이종수씨(38)는 요조와 8년째 함께 살고 있는 애인이다. 요조는 그동안 총 6권의 책을 출간했는데, 그중 산문집 (2017), (2018), (2021) 등에서 종종 종수씨를 언급했다. - 책방에 주로 기후위기와 인권, 동물, 페미니즘 관련 책과 고전문학·현대문학이 보이네요. 1호점도 그런 것으로 아는데, 무심코 들어왔다가 찾는 책이 없어 돌아가는 손님도 꽤 있겠는걸요. “책방을 둘러보다가 ‘페미니스트세요?’라고 묻거나 자기들끼리 ‘메갈(극단적 페미니스트)인가 봐’라고 쑥덕대며 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웃음). 세상에는 아주 많은 책이 있어요. 제가 구축한 책방의 색깔이 마음에 안 들 수 있죠. 제 관심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큐레이션이니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스스로도 책방의 변화를 느껴요. 시기별로 특정 작가나 주제를 지닌 책들이 우르르 꽂혀 있거든요.” - 책방 이름에 ‘무사’를 넣은 건 ‘망하지 말자, 무사하자’는 희망사항을 담은 것이라고요. 2호점의 탄생은 1호점의 ‘무사’를 방증하는 거겠지요. “처음 몇해는 고전했어요. 수익 면에서는 지속적인 마이너스 상태였죠(웃음). 다른 데서 번 돈으로 서점의 적자를 계속 메꿔야 했어요. 그러다 입소문이 나면서 찾는 분들이 늘었어요. 지금 1호점은 안정적인 상태예요. 또 2호점은 월세를 소속사에서 내주고 있어요. 대신 2호점의 매출을 올려야 할 책임이 제게 있죠.” - 소상공인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겠어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너무나 대단한 일임을 책방을 열고서야 알게 됐어요. 무례하고 폭력적인 사람들이 아주 많거든요. 영업 중인 책방 앞에 버젓이 차를 세워놓고 도리어 화를 내는 사람, 심지어 책방 문조차 열 수 없을 만큼 바짝 주차해놓고 전화번호도 남겨놓지 않아 하루종일 손님을 받지 못한 적도 있어요. 개업 초창기 땐 너무 지쳐 얼른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그럼에도 계속 하는 이유가 뭔가요. “저를 힘들게 하는 것도 사람이지만,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사람이니까요. 책방이라는 공간에서는 온라인으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요. 서로의 눈을 보고 마음을 나누고 영감을 주고받는 일들…. 그런 게 굉장히 좋더라고요. 책방무사의 일이라면 두 팔 걷고 나서주는 단골들도 꽤 있어요. 손님으로 왔다가 진짜 친구가 된 거죠.” 2010년 이전의 요조의 음악은 귀엽고 샤방샤방한 느낌이었다면, 2010년 이후 발표한 곡들은 한결 깊어진다. 이후 줄곧 요조는 음악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은 2010년 인디가수 요조의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0년 이전과 이후 음악색깔·깊이 달라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 변화에 가장 큰 영향 끼친 것은 독서 다양한 활동하면서 음악도 하겠다 그는 음악을 사랑해 번갈아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기를 즐기던 부모 밑에서 자랐다. 그 영향으로 대학에서 흑인음악동아리에 가입했고, 우연히 허밍 어반 스테레오 음반의 가이드보컬을 하게 됐다. 그즈음 아르바이트를 하던 던킨도너츠 매장에서 자신이 부른 ‘바나나 쉐이크’, ‘샐러드 기념일’이 흘러나왔다. 손님들의 ‘노래 좋다’는 반응에 처음으로 ‘뮤지션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수년간의 무명 시절을 거쳐 2007년 정식으로 가수로 데뷔했다. 예명인 요조는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 - 요조씨의 음악은 201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크게 달라졌어요. ‘에구구구’(2008), ‘좋아해’(2009) 등 2010년 이전 곡들이 한결같이 귀엽고 샤방샤방한 느낌이었다면, ‘나의 쓸모’(2013) 등 이후 곡들은 깊어지면서 음악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세상을 이야기해요. 전환점의 계기가 있었나요. “저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데뷔 후 초창기 때는 프로듀서가 제 목소리가 귀여운 느낌을 준다며 전면에 내세우고 싶어했어요. 목소리가 그럴 뿐, 저라는 사람은 귀여운 것과 거리가 있기 때문에 스스로 부조화를 느꼈어요.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2010)를 발표할 즈음에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고, 어떻게 가창하고 싶은지 자각이 일었어요. 그러면서 음악이 달라졌어요.” - 그런 변화에 큰 영향을 끼친 건 뭔가요. “책이에요. 2010년 이후 독서를 열심히 했거든요. 똑똑해지고 싶었나 봐요(웃음).” 왕성한 독서는 음악뿐 아니라 그의 일상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동물권을 지키고 기후위기에 맞서기 위해 채식주의자가 됐다.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해변 쓰레기를 줍는 ‘비치코밍’에 합류하고 플라스틱 대신 천가방을 애용하는가 하면 가급적 중고물품을 구입한다. 자칭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 요조씨의 음악은 확실히 가사 비중이 높아요. 편곡도 단순하고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도 않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음악을 만들 때 무슨 이야기를 할까를 가장 치열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곡을 만들 때 작사부터 마친 후 음표를 그려요.” - 예전만큼 음악활동을 활발히 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최근 몇년간은 작가로, 책방 주인으로, 강연자로, 방송인으로 더 많이 활약했어요.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음악도 하는’ 요조로 살고 싶은 건가요. “그렇게 살면 좋을 것 같아요. 저의 템포라고 생각해요. 가끔 한 번씩 신곡을 내는…. 천성이 욕심이 없기도 하지만 무리하고 싶지는 않아요.” - 음악적 영감이 예전만큼 떠오르지 않아서는 아닙니까. “당연히 그래요. 데뷔 초에는 툭 하면 곡 하나를 완성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영감이 그렇게 후드득 떨어지지 않아요. 슬픈 일이에요. 하지만 ‘영감이 잘 안 떠올라, 그래서 속상해’라고 글을 쓸 수 있어 좋아요.” - 뮤지션으로서 음악활동이 느슨해지는 데 따른 불안감·자책감은 없나요. “뮤지션으로서의 요조가 잊힌다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그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이내 스타카토로 또박또박, 그러나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직도 좀 헷갈려요. 자본주의적 세뇌 같기도 해요. 대중에게 잊히지 않는 가치 있는 상품이 되려고 꾸준히 뭔가를 생산해내거나 다방면의 능력자가 돼야 한다는 강박…. 그런 것에 저항하고 싶어요.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이 많고,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고, 꼭 그래야 가치 있는 삶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요조는 “예전처럼 음악적 영감이 후두득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감이 잘 안 떠올라, 그래서 속상해’라고 글을 쓸 수 있어 좋다고 했다. / 김창길 기자 8년간 함께 산 이종수를 사랑하지만 결혼제도로 구속하는 관계는 싫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축하할 것 아이 생각 없어…세상 충분히 안전치 않아 사랑에 대한, 결혼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8년간 같이 살아온 종수씨 이야기를 꺼냈다. 산문집 에서 요조는 이렇게 기술했다. “이종수의 자는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가 소리 죽여 울 때가 가끔 있다. (중략) 지금의 초초분분이 얼마나 지극하게 소중한 것인지, 이런 귀한 시간을 마냥 흐르게 두고서 바보 같은 얼굴로 잠들어 있는 이종수가 얼마나 연약하고 가여운 존재인지가 절절히 느껴졌다.” - 이종수씨와는 어떻게 만났나요. “프랑스에서 마임을 공부하고 있던 종수가 어느 날 페이스북으로 제게 메시지를 보냈어요. 특별한 내용은 아니어서 무시할 수 있었는데, 프로필 사진을 보니까 잘생겼더라고요(웃음). 이후 친구가 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강산에 오빠가 우리 둘을 소개해주려고 했더라고요. 종수가 산에 오빠의 프랑스 공연 현지 가이드였거든요. 종수는 당시 산에 오빠가 소개하겠다고 한 후배가 저인 줄 모르고 메시지를 보낸 거였어요. 우리가 사귄 것은 2014년 종수가 귀국한 후부터예요.” - 8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을 같이 살았는데, 결혼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결혼제도가 지닌 여러 책임에 저는 불만이 있어요. 사랑은 두 사람이 하는 것인데 다른 가족들까지도 신경을 써야 하니까요. 또 사랑을 왜 혼인신고서라는 양식을 통해 국가로부터 허락받아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앞으로도 이종수와 살 가능성이 크지만, 굳이 결혼으로 묶이고 싶지는 않아요. 종수에게 가끔 이렇게 말해요. ‘나랑 지내다가도 언젠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타나면 꼭 말해주면 좋겠다’고요. 쉽지는 않겠지만 새롭게 만나는 사랑을 축하해주는 관계가 되고 싶거든요.” - 서로 사랑하는 사이 아닌가요. “사랑하죠. 앞날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서로 구속하지 말자는 거예요. 이런 마음이 관계를 매 순간 느슨하지 않게 붙잡아주는 것도 같아요. 관계라는 게 영원하지 않잖아요. 언제 어떤 이유로 이별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같이 있는 동안 더 충실할 수 있어요.” - 종수씨도 같은 생각인가요. “종수는 결혼을 원하던 시기가 살짝 있었지만 지금은 저와 생각이 같아요. 각자의 부모님도 우리가 다 설득했어요. 우리 둘과 부모님 네분, 이렇게 여섯명이 여행도 다닐 만큼 관계도 좋아요.” - 올해 만으로 마흔한 살인데, 아이 생각도 없습니까. “없어요. 여러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아이를 낳아 살기에 충분히 안전한 세상이 아닌 것 같아요. 저나 이종수나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있어 생계에 걱정이 없다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으니까요. 지금도 기저에 불안감을 품고 지내는데, 아이를 낳아 세 식구가 되면 그 불안감이 전면으로 드러나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있어요.” - 의외네요. 셀럽인데다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생계의 불안감과 공포를 지니고 있다는 게. “아이를 키우면서 그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어요.” - 종수씨의 직업은 뭔가요. “원래는 연기를 했는데, 한국에 돌아와 저를 만난 후 제빵사가 됐어요. 매일 빵을 만들어 제주지역 빵집에 납품하고 있어요.” - 책에서 종수씨의 자는 얼굴을 보며 가끔 소리 죽여 운다고 했는데, 사랑이 깊어서일까요. “오래 만나다 보면 연민이 두 사람을 지탱해주는 핵심 감정이 되는 것 같아요. 종수가 자고 있는 모습이나 일할 때 뒷모습을 보면 되게 짠하고 슬픈 기분이 들어요. 아마 종수도 저에게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요?” 나이를 먹으면서 영양제도 챙겨먹고 운동도 꾸준히 한다는 요조는 ‘달리기’ 예찬론자다.“뛰기 시작한 지 2~3년 정도 됐다”고 했다. / 김창길 기자 2~3일에 한 번씩 마로니에공원 뛴다 달리다가 왈칵 눈물 쏟는 일도 있어 예쁜 풍경·사람 보면 삶이 감사하고 행복해 훌륭한 사람들 열심히 흉내내며 살 것 수년 전부터 영양제를 챙겨먹고 운동도 꾸준히 한다는 그는 ‘달리기’ 예찬론자다. “시작한 지 2~3년 정도 됐다”고 했다. - 서울생활 중에도 달리기는 여전히 하고 있습니까. “그럼요. 2~3일에 한 번씩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주변을 30분씩 뛰어요. 아침에 뛸 때도 있고, 밤이나 낮에 뛸 때도 있어요. 눈만 남기고 얼굴 전체를 다 가리고 뛰니까 사람들은 뛰는 제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를 거예요(웃음).” - 왜 그렇게 열심히 달리나요.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서 즉각적으로 기분 좋게 만들어주니까요. 또 까닭은 모르겠는데, 달리고 있으면 살아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평소에는 하지 않던 생각을 이상하게 하게 돼요.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달리기를 하는 많은 분들이 그러세요. 달리다가 우는 분들도 많아요. 저도 울어요. 너무 감사해서….” - 달리기를 안 하는 저로서는 생경한 이야기네요. “달리다 보면 순간적으로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요인들이 있거든요. 날씨라든가, 음악이라든가, 달리면서 보게 되는 풍경 또는 사람…. 지난봄에는 막 달리고 있는데 저만치 앞에서 걷던 할머니가 날씨도 좋고 꽃나무에 꽃도 피어 기분이 좋으셨는지 갑자기 춤을 추는 거예요. 왈칵 눈물이 쏟아졌어요. 자주 세상이 끔찍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틈에 이런 예쁜 모습들이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 있어요. 덕분에 제 멘털도 건강해졌어요.” 그는 자신을 “민감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요조이고 싶은지” 물었다. 돌아온 답은 예상을 비껴갔다. 그는 “주변의 훌륭한 사람들을 열심히 흉내내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재미있을 것 같아요. 대체로 누구나 닮고 싶은 부분이 있으니까요. 작게는 메이크업부터 크게는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직관적으로 되게 좋아보이고 멋있어 보이면 일단 흉내내려 해요.” 인터뷰를 마치고 거리로 나섰다. 코로나19 이전이라면 밝은 조명과 젊은이들의 욕망으로 한창 휘황찬란하게 빛을 뿜어냈을 도시. 정부의 방역조치로 밤 9시가 넘은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숙연하기까지 했다. 요조책방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