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생중계·혐오의 합작, 극우 총기 난사···독일로 번진 ‘크라이스트처치’의 악몽

정원식 기자
9일(현지시간) 독일 작센안할트주 할레에서 발생한 유대교회당 총격 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이 거리에 주차한 차량 뒤에서 총기를 발사하고 있다. 사진은 ATV 스튜디오 할레에서 포착한 영상.  AFP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독일 작센안할트주 할레에서 발생한 유대교회당 총격 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이 거리에 주차한 차량 뒤에서 총기를 발사하고 있다. 사진은 ATV 스튜디오 할레에서 포착한 영상.  AFP연합뉴스

유대교 명절에 독일에서 20대 남성이 유대교회당(시나고그) 앞에서 총기를 난사해 2명이 사망했다. 범인이 건물 진입에 실패해 대형 참사로 이어지진 않았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 가해자인 독일에서 유대인을 겨냥해 벌인 공격이어서 파장이 크다. 또한 51명이 사망한 지난 3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모스크 총기난사 때처럼 이번에도 범행 장면이 온라인으로 생중계됐다. 영상은 곧바로 삭제됐으나 극단주의가 온라인의 파급력과 만나 사회적 충격을 증폭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다.

dpa통신 등에 따르면 9일 정오쯤(현지시간) 동부 작센안할트주 할레의 유대교회당 앞에서 군복을 입고 금속 헬멧을 착용한 남성이 총기와 폭발물을 가지고 진입을 시도했다. 당시 교회당 안에서는 유대교 최대 명절인 욤키푸르(속죄일)를 맞아 50여명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테러범이 출입문을 뚫는 데 실패해 더 큰 참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 지역 유대인 공동체 대표인 막스 프리보로츠키는 슈피겔에 “테러범이 출입구에 반복해서 총격을 가하고 화염병과 폭죽, 수류탄을 던졌다”면서 “신의 가호로 문은 부서지지 않았으나 5~10분간 총격이 지속됐다”고 말했다. 회당 안 사람들은 문을 잠그고 경찰을 기다린 것으로 전해졌다.

진입에 실패한 범인은 거리에서 총을 쏴 지나가던 여성 1명이 숨졌다. 범인은 뒤이어 주변 케밥 가게에 들어가 총기를 난사, 남성 1명이 살해됐다. 현장에서 목격한 콘라트 뢰슬러는 범인이 군복과 헬멧을 쓰고 들어와 섬광탄을 던지고 총격을 가했다고 말했다. 당시 가게 안에는 5~6명이 있었다. 가게 직원은 NTV방송에 “(범인이) 침착했고 프로 같았다. 내가 케밥을 만들 듯 총을 쐈다”고 했다. 범인은 곧바로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작센안할트주 아이슬레벤 출신의 ‘슈테판 B’라는 27세 남성이라고만 전했다. 사용한 무기의 종류는 알려지지 않았다.

범인은 이날 자신의 공격을 약 35분간 아마존 계열의 온라인 게임 플랫폼 ‘트위치’로 생중계했다. 동영상 도입부에서 그는 영어로 자신의 이름을 ‘아논(Anon·익명)’이라고 소개했다. 온라인 극우의 온상으로 지목된 극우 성향 커뮤니티 ‘포챈’이나 ‘에이트챈’ 사용자들이 많이 쓰는 이름이다. 범인은 홀로코스트를 부인하고 페미니스트와 이민자들을 비난했다. 그러면서 “이 모든 문제의 뿌리는 유대인”이라고 주장했다. 독일 밖의 시청자들을 염두에 두고 영어를 쓴 것으로 추정된다.

트위치 측에 따르면 생중계는 5명이 봤고, 이후에 2200명 정도가 시청했다. 트위치는 동영상을 곧바로 삭제했으나 트위터와 텔레그램 등 다른 소셜미디어로 일부 퍼졌고,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은 발견되는대로 삭제하고 있다.

9일(현지시간) 독일 작센안할트주 할레의 유대교회당의 입구가 굳게 닫힌 가운데 경찰차가 서 있다. AFP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독일 작센안할트주 할레의 유대교회당의 입구가 굳게 닫힌 가운데 경찰차가 서 있다. AFP연합뉴스

온라인으로 ‘극우 선언’을 하고 범행을 생중계했다는 점에서 이번 공격은 올들어 곳곳에서 일어난 극우파 공격들과 유사하다. 지난 3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모스크를 공격한 브렌튼 태런트(28)는 범행 전 소셜미디어에 테러 동기를 설명하는 영상을 먼저 올렸다. 그러고는 차를 타고 모스크로 이동할 때부터 조준 사격을 하는 장면이 담긴 17분 분량의 영상을 페이스북에서 생중계해 충격을 줬다.

지난 4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포웨이의 유대교회당을 공격한 존 어니스트(19)도 ‘에이트챈’에 유대인을 비난하는 ‘공개서한’을 올렸다. 어니스트는 페이스북을 통해 범행을 생중계하려 했으나 계정이 차단돼 실패했다. 8월 텍사스주 엘패소 월마트에서 총기를 난사해 22명을 숨지게 한 패트릭 크루시어스(21)는 범행을 생중계하진 않았지만 범행 전 ‘에이트챈’에 선언문을 올렸다. 영국 가디언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온라인 생중계는 공격 효과를 증폭하고 지지자들을 모으기 위한 것”이라면서 “잠재적 범인들을 부추기는 급진화 도구”라고 지적했다.

호르스트 제호퍼 독일 내무장관은 이번 사건을 “반유대주의 공격”으로 규정했다. 반유대주의 공격은 최근 들어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5월 내무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의 반유대주의 범죄는 1799건으로 2017년의 1504건보다 19.6% 늘었다. 독일 정부의 반유대주의 문제 담당 관료가 유대인들에게 “전통모자 키파를 쓰고 다니면 위험해질 수 있다”고 발언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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