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플랫폼에 올라온 웹소설 소개 화면. ‘네이버 시리즈’ 갈무리 [한겨레 프리즘] 이승준ㅣ이슈팀장 ‘오늘도 애를 쓴다고 썼는데….’ 하루를 마감하고 누울 때마다 되감을 수 없는 일들을 되감느라 쉽게 잠들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휴대전화 웹소설 앱을 실행시킨다. 뒤숭숭한 머릿속을 비우는 현실도피다. 웹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 어리둥절했다. 만화나 판타지, 추리 소설 등 장르물에 한참 빠졌던 10대 이후 공백 때문일까. 작품 세계가 너무 달랐다. 웹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오랜 시간 모험을 하고 성장하며 점차 강해지는 서사를 찾기 어렵다. ‘회빙환’ 세계관이 웹소설을 지배한 지 오래다. 회빙환은 회귀·빙의·환생의 앞글자를 딴 조어로, 웹소설 독자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삶을 바꾼다거나, 결말을 알고 있는 판타지 소설 속의 조연이 된다거나, 평소 동경하던 능력을 갖춘 인물로 태어나는 등 회빙환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다.
그러나 회빙환의 세계관이 한국 사회의 거울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계층 상승의 마지막 열차라며 암호화폐에 ‘영끌’한 2021년 한국 사회 청년들의 갈망을 웹소설은 예민하게 포착한다. ‘노오오오력’해도 ‘이번 생은 망했다’는 20~30대의 절망은 게임처럼 인생도 ‘리셋’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웹소설에 투영된다. 대부분 주인공이 완벽한 능력을 갖춘 ‘먼치킨’이고 별다른 시련 없이 문제를 척척 해결하는 ‘사이다 전개’는 ‘금수저의 삶’에 대한 판타지로 읽힌다. 웹소설에 자주 사용되는 ‘나 혼자만~’ ‘○○○로 사는 법’ 같은 제목도 좀처럼 바꿀 수 없는 현실을 잊고 ‘나 혼자 폼나게 사는 법’을 꿈꾸는 이들의 마음이 포개진다. 좁은 고시원에 살며 일용직 노동을 전전하던 흙수저 대학생이 웹소설 속 유럽 중세 귀족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 현실에서는 써먹지 못할 전공 지식을 활용해 영지를 개발하는 이야기까지 접하니 웹소설을 그저 재미로만 즐길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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